[시가있는아침] ‘노인과 수평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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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인과 수평선’- 최동호(1948∼ )

저물녘 수평선을 무릎 아래 두고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의

구부정한 실루엣은

전생의 주인을 모시고 가는

충직한 종과 같이 공손하다

다음 생에서 개는 주인이 되고

노인은 개가 되어

서로의 실루엣을 끌고

미래의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먼 바다에서 달려 온 파도가 마지막

어둠의 엉덩이를

해안선에서 철썩 후려쳐 되돌려 보낸 다음

새벽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끼룩거리는

모래사장에서 개와 함께

뛰어 노는 아이들도 한 생애를 돌아

언젠가 다시 저물녘

수평선을 그의 무릎 아래 두고

구부정한 실루엣처럼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씨앗이 입에 쓰면 그 열매도 입에 쓰게 마련이다. 인연법이기 때문이다. 인연법은 생을 바꿔가면서까지 뒤따라온다. 잘못 많은 사람은 윤회가 가없다. 마치 개미떼가 줄지어 휘돌아 나아감에 끝날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했다. 그래서 선업에는 선과(善果)요, 악업에는 악과(惡果)라 했다. 다음 생애에 나와 당신은 어떤 목숨을 받을까. 죽음이 우리의 엉덩이를 철썩 후려쳐 되돌려 보낸 그 다음에는. 이 큰 바퀴를 두려워할 일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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