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도 넘은 시장 사모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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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정중히 사과드린다. 앞으로 보다 엄격하고 겸손하게 시정을 수행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목소리에는 영 힘이 없었다.

그는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오늘은 사과만 할 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물었다. 1년9개월째 시정을 이끌어온 허 시장은 이번 일을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데다 가족이 관련된 문제여서 적극적인 해명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말을 몹시 아끼는 눈치였다.

허 시장은 자신의 부인이 한 행동이 다른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왜 나만 문제 삼느냐'고 야속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관행이고, 다른 자치단체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명백히 잘못은 잘못이다. '수신(修身)'은 물론 '제가(齊家)'에 미흡했다는 차원을 떠나 국민의 눈에는 몸에 밴 특권의식으로밖에 안 보인다. '비밀'이 없어져 가는 시대에 본인은 물론 주변도 잘 관리하는 것이 지도자의 본분이다. 자신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하면 고위 공직자로서의 덕목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최근 잇따라 벌어진 '골프 파동'이나 '테니스 소동'에서 공직자에게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댄 국민에게는 이번 일이 곱게 보일 리 없다. 한 네티즌은 "그동안 공직사회에 나돌던 '안방 권력'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게 아니냐"며 씁쓰레해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장 부인에 대해 상식 수준의 예우를 한다면 누가 문제 삼겠느냐"며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부산시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단체도 이번 일을 또 다른 잘못된 관행이 있지 않은가 살펴서 고치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강진권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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