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논술·수능 '죽음의 트라이앵글' 교육 비판한 동영상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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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이런 영상을 만들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동영상 제작자는 '햐얀 늑대'라고만 돼 있다.

동영상에 인용된 글은 학습방법 교습업체 대표인 조모(28)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는 "내 인터넷 카페 회원 중 지방 고교생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내 글을 퍼다가 동영상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라이앵글'이라는 이 동영상은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마다 이 동영상이 담긴 블로그.카페가 100개가 넘는다. 엠파스의 경우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이 동영상 검색 건수가 2만3800여 건이었다.

이 동영상은 기성세대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가득하다. 2008년 대입은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교사들-학원 업자들-대학의 담합을 맹공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5월 고교 1학년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등에서 대입 제도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벌인 데 이어 또다시 이런 동영상이 확산하는 데 대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 "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 트라이앵글'은 "정부는 늘어나는 사교육비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고, 또 학교 교사들의 반발 때문에 수능 비중을 낮췄다"고 주장했다. 또 "'우린 뭘 먹고 살란 말이냐'는 학원들의 반발에 수능도 그대로 유지됐다"고 덧붙였다. 대학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 결국 내신-수능-대학별 고사의 '아름다운 삼각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이 동영상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 균형은 누굴 위한 것이냐. 여기서 학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호소하고 있다. 이어 "우리 가슴속의 분노와 피해의식, 그 모든 것은 바로 당신들이 키웠다"면서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 엇갈리는 반응=서울 K고 2학년 이모(16)군은 "수능.내신.논술 모두에 묶여 있는 우리 처지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브리핑에 답글을 올린 학생도 "저주받은 89년생… 아예 앞길이 막힌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서울 E고 2학년 한모군은 "답답하지만 대안이 없는 거 아니냐"며 "동영상을 보면 공부도 안 되고 솔직히 속만 상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촌고 1학년 담임인 김남연(33) 교사는 "학교.학원.대학의 줄다리기에 학생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라며 "고교생이 이렇게 구조적인 문제점까지 지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기성세대의 반성=한국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이 동영상이 학생들을 자극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할까봐 걱정"이라며 "정부.교사.대학이 학생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대안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교육과 시민사회 윤지희 공동대표는 "기성세대는 고교생들이 던지는 적개심과 분노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입시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대학 학무과 관계자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입시제도로 보는 암울한 내용"이라며 "하지만 입시 현실을 왜곡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홍준.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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