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인권 향상" 레이건이 추켜세워|일정 모두 끝낸 미소 정상 회담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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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명 문구에 실랑이>
미·소 양측은 공동 성명을 다듬는 과정에서 「양국의 대화가 현재의 문제뿐 아니라 내일과 다음 세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설적인 바탕이 될 것」이란 문구 때문에 신경전을 벌인 듯.
「고르바초프」는 기자 회견에서 미국 측의 이 안에 대해 「무력 사용 중지」와 「평화 공존」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거부되었다고 불평했는데 「레이건」도 『좋다』고 한 「고르바초프」의 제안을 미국측 실무진들이 그같은 모호한 표현이 과거에 준수된 적이 없다며 거부했다는 것.

<인권 문제 계속 거론>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소련에서는 인권 문제가 상당히 향상됐다고 「고르바초프」를 치켜세워 그가 이번 정상 회담 기간 중 계속 인권 문제를 거론했던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레이건」은 소련에서 이미 3백명의 구속자가 석방되는 등 개선을 보였다고 말하고 『이는 상당 수준의 인권 개선』이라고 논평.
「레이건」은 그러나 소련 내 유대인들의 출국 제한은 소련의 관료주의 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때와 장소 따라 틀려>
소련 최고 지도자로 국내에서 첫 공개 기자 회견을 가진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1일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가리켜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던 것과 관련, 『크렘린 성곽 안에서, 그것도 제정 러시아 황제의 대포가 있는 「악의 제국」의 심장부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더 이상 「악의 제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노」라고 말했다』고 소개.
「레이건」 대통령은 이 기자 회견 전에 그의 「악의 제국」과 관련한 기자 질문에 『때와 장소가 달랐었다』며 그같은 호칭은 「고르바초프」 서기장 집권 이전의 소련을 가리킨 것이라고 시사했었다.

<레이건 피곤한 기색>
회담 3일째가 되자 올해 77세의 「레이건」 대통령은 고령에 시차 조정의 어려움 탓인지 눈에 띄게 피곤한 모습인데 비해 그보다 20세나 연하이며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는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활력에 찬 모습.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31일 오전 「레이건」 대통령과의 예정을 넘긴 3차 회의에 이어 붉은 광장 산책을 안내한 후 곧바로 군축 협정서 조인식에 참석하는 등 정치가·협상가·관광 안내자로서 정력을 과시.
이에 비해 「레이건」은 연일 이어지는 회담에 지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소련 지식인들의 일부가 참석한 가운데 「작가의 집」에서 있은 오찬 석상에서는 깜박 고개를 떨구며 졸기도.

<서방 기자들에 친절>
기자 회견장의 「고르바초프」는 서방 기자들에게 회견 진행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는등 특별히 친절하게 굴어 관심을 모았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외무성 기자 회견장에서 일부 서방 기자들이 동시 통역 이어폰도 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 자리에 기자 회견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동시 통역이 필요한 기자들은 이어폰이 있는 자리로 옮겨 앉으라』며 특별히 좌석 배치 조정에 앞장서기도.
그는 통역이 제대로 자신의 말을 따라갈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주는가 하면 『영어 동시 통역이 잘되고 있느냐』며 기자들에게 묻기도.

<소 야 단체 가두 시위>
미·소 정상 회담이 끝난 1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야당 단체의 시위가 벌어져 이채.
최근 새로 구성된 야당 단체의 30명 구성원들은 2백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모스크바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과 비밀 경찰들은 이들을 별로 제지하지 않았다.

<백조의 호수 등 관람>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는 정상 회담이 끝난 1일 오후 볼쇼이 발레단 공연을 참관.
이날 발레 공연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미녀」「프로코피에프」 작곡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날 볼쇼이 극장의 로열박스에는 미국 성조기와 소련 국기가 장식돼 있었으며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나란히 앉아 자연스레 팔이 서로 상대방의 허리에 닿는 등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내말도 들어보세요>
미·소의 퍼스트 레이디들은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는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모스크바의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몇차례 짜증스러운 말을 주고받아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고.
화랑을 안내하던 「라이사」 여사가 그림 설명을 할 때 「낸시」 여사는 여러 차례가 가로막으며 『잠깐 내 말도 들어보세요』라고 다소 거칠게 말했다는 것.
「낸시」 여사는 또 이 화랑에 전시된 서화를 설명하는 「라이사」 여사가 종교적인 측면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착안, 『어떻게 종교적인 요소를 무시할수 있겠느냐』고 시비조로 따지기도.
「낸시」 여사는 또 『이곳에서 종교적인 집회가 열렸느냐』고 묻자 「라이사」 여사는『아니오』라고 단호한 답변을 했는데 45분간의 관람이 끝나자 「낸시」 여사의 대변인은『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행사였다』고 푸념.
이들은 또 1일 하오 볼쇼이극장 관람을 함께 했으나 서로 한마디도 건네지 않는 등 불편한 심사를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모스크바 외신 종합=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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