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김명인(1946∼ )
새집들에 둘러싸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내 사는 집이 낡아간다
이태 전 태풍에는 기와 몇 장 이 빠지더니
작년 겨울 허리 꺾인 안테나
아직도 굴뚝에 매달린 채다
자주자주 이사해야 한재산 불어난다고
낯익히던 이웃들 하나 둘
아파트며 빌라로 죄다 떠나갔지만
이십 년도 넘게 나는
언덕길 막바지 이 집을 버텨왔다
지상의 집이란
빈부에 젖어 살이 우는 동안만 집인 것을
집을 치장하거나 수리하는
그 쏠쏠한 재미조차 접어버리고서도
먼 여행 중에는 집의 안부가 궁금해져
수도 없이 전화를 넣거나 일정을 앞당기곤 했다
언젠가는 또 비워주고 떠날
허름한 집 한 채
아이들 끌고 이 문간 저 문간 기웃대면서
안채의 불빛 실루엣에도 축축해지던
시퍼런 가장의
뻐꾸기 둥지 뒤지던 세월도 있었다
큰 수족관에서 심해어를 본 후로 나는 오래된 집을 ‘심해어 같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몸비늘의 문양은 꼭 오래된 집의 청태 낀 기와지붕 같았다. 나도 저런 집 한 채를 이 지상에서 빌려 살았으면 싶었다. 그 집에 세들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출가하고 그런 후에 너무 오래돼 아무도 그 집에 살지 않으려 할 때 비로소 내가 소유하게 될 집. 내가 죽으면 같이 허물어질 집. <문태준 시인>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