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부적절한 대북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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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중앙통신이 금강산 이산상봉 남측 대표단장으로부터 '사과 문건'을 받았다고 보도한 24일. 통일부 당국자는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그렇지만 논란은 봉합되지 않았다. 대북 사과 의혹으로 번졌다. 정부의 미덥지 않은 행동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대북 서한 전달 사실을 숨겼다. 북한이 90대 고령자를 포함한 이산가족 149명의 귀환을 10시간 가까이 지연시킨 22일 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넘어야 할 산은 넘겠다"며 북측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뒤로는 북한에 문건을 건넸다.

또 '사과 문건'이란 북한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면서도 문건을 열람조차 못하게 버티는 것도 문제다. 떳떳지 않은 대목이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요구 직후 문건을 건넨 것도 신중치 못했다. 북한이 그 문건을 어떻게 써먹을지, 덜컥 공개한 뒤 파장은 어떨지에 대한 남측의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 2002년 6월 서해교전 직후 정부는 북한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간주했다. "외교적으로 유감은 사과 표명"이란 해석도 곁들였었다.

13차 이산상봉을 얼룩지게 한 책임은 물론 북한 당국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어수룩한 대처도 따져야 한다. 미리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을 숨기다 불신만 자초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문제가 된 '납북자' 용어를 고치는 걸 검토하겠다"며 한심한 발상을 하고 있다. 납북자.국군포로를 '본의 아니게 북에 남게 된 분들'이라고 표현해 여론의 반발을 샀던 게 얼마 전이다.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는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되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때 하나씩 만들어진다. 북한 눈치 보기로 구축한 성과는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통일부는 명심해야 한다.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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