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위 '공직자 골프 금지' 첫 주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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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 A씨는 이날 전화를 붙들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주말마다 줄줄이 예정돼 있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서다. A씨는 "청렴위의 지침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당분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달치 골프 스케줄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에 갑자기 부킹을 취소하는 것도 어려운 데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아 대신 가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난감해했다.

정부 부처의 한 기관장은 이날 오전 국.과장들을 불러모았다. 토요일에 골프를 함께하기로 한 이들이 직무와 관련은 없는 것 같았지만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장은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부킹을 취소했다. 그는 "내가 만든 자리여서 초대 손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며 씁쓸해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더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구체적 업무 연관성이 있어야 직무관련자로 인정된다고는 하지만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이 '잠재적'인 직무관련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의 J과장은 "암행감찰단이 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거나 가명을 써도 소용없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골프장 측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주말엔 워낙 부킹 경쟁이 심해 예약이 일부 취소되더라도 예비팀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운영해 공무원의 출입이 잦은 천안 상록골프장의 부킹 담당자는 "예약 취소는 없었지만 공무원들이 취소할 것을 기대하고 남는 자리가 생겼느냐고 묻는 전화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골프장에서는 예약 취소 사태도 있었다. 공무원 출입이 잦은 서울 인근 36홀짜리 회원제 골프장은 이번 주말 10여 개 팀이 무더기 취소를 했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일부 배짱 좋은 공무원들은 실명 예약을 가명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현철.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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