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돌' 이세돌· '독사' 최철한 … 사이판 결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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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린 시절 동문수학했던 '쎈돌' 이세돌 9단과 '독사'최철한 9단이 26일 서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에서 맞붙는다. 최고의 9단을 가리는 맥심커피배 입신연승 최강전 결승 2국이 그곳 월드 리조트에서 열린다.

3번기의 첫판을 이긴 이세돌 9단은 느긋한 심정으로 새색시 김현진씨와 동행한다. 2주 전 결혼한 새신랑 이세돌은 결혼식이 춘란배 세계대회와 겹치는 바람에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결혼 선물 삼아 우승컵을 따낸 뒤 아예 신혼여행까지 즐기고 올 예정이다. 최철한 9단은 '신혼여행' 건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이번 대결만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한다. 결혼은 축하하지만 신혼여행 가는 사람에게 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세돌.최철한은 어렸을 때 권갑룡도장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공부했고 나란히 프로가 됐다. 처음엔 이세돌이 앞서 나갔지만 두 살 아래인 최철한이 빠르게 따라붙으며 지금은 이창호 9단의 후계 자리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가 됐다.

지금까지 두사람은 13번 만나 이세돌 쪽이 9번을 이겼다. 이세돌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승전에선 딱 두 번 만나 1승1패. 지난해 7월의 후지쓰배 세계대회 결승에선 이세돌이 이겼고 8월의 중환배 세계대회 결승에선 최철한이 이겼다. 그러니 이번 맥심배는 1대1 상태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결승전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두 기사는 국내대회 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창호 9단이란 절대 강자를 주로 추격하느라 둘이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많아질 것이다. 이창호 이후의 왕좌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은 혈투를 피할 수 없는 입장이며 이번 사이판 대결은 그 서곡이나 다름없다.

2005년 상금랭킹에선 이세돌이 1위, 최철한은 3위. 2006년 3월 현재의 랭킹은 최철한 2위, 이세돌 3위. 상금 킬러라 불리는 이세돌이 돈은 더 많이 벌었지만 현재의 랭킹에선 최철한이 간발의 차이로 이세돌을 앞서고 있다.

이세돌 9단은 기습과 타개에 능한 변칙 플레이어이고 전투감각이 탁월하다. 최철한 9단은 성벽과 같은 두터움에 깊은 수읽기, 그리고 동아줄처럼 질기고 강한 완력이 특징이다. 이세돌이 날카롭고 빠르다면 최철한은 뼈저린 감이 있고, 이세돌이 어둠 속의 표범을 연상시킨다면 최철한은 한 번 물면 치명상을 안겨주는 사막의 독사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의 컨디션은 이세돌 쪽이 좋다. 그는 결혼식 와중에서도 춘란배 8강에 올랐고 올해 들어 18승 3패로 다승 1위에 85.7%의 고감도 승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가 이세돌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다.

최철한 쪽은 어딘지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3주전의 국수전에선 이창호 9단에게 2 대 3으로 타이틀을 내줬고 2주 전의 춘란배에선 중국의 신예 셰허(謝赫)에게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현재의 전적도 13승6패로 다승 11위. 2004년도 최우수기사(MVP)에 올랐던 최철한으로선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가 이번 사이판 대결만은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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