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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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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572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 라뮈 교수가 당시 학문의 표준이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은 무엇이든 거짓이다."

왕립위원회는 그의 강의를 금지시켰다. 책도 불태워 버렸다. 가톨릭계 암살단이 학교에 난입해 라뮈 교수를 죽이고 시신을 동강내 센강에 던졌다. 그 비극적인 죽음 위에 학문의 자유가 싹텄다. "자유 없이 지식 없다"는 라뮈 정신은 소르본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1968년 소르본대는 '68혁명'의 사령부였다. 학생들은 노조와 손잡고 기존 체제를 깡그리 뒤엎기 시작했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으로" "국경을 타도하라" "섹스도 혁명이다"…. 1000만 명을 웃도는 시위대는 사회해방.개인해방을 부르짖었다. 새로운 정권 수립조차 기성체제로 거부한, 문화혁명이었다. 기존의 금기는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지배세력은 가까스로 공산당과 손잡고 급한 불을 껐다.

폭동의 발단은 의외로 단순했다. 전후 베이비 붐으로 대학생이 세 배나 늘어났다. 반면 고학력 실업사태로 사회진출에 대한 불안감은 누적됐다. 열악한 교육시설이 불만이던 낭테르대 학생들이 설득차 찾아온 교육장관을 붙잡아 수영장에 내팽개쳤다. 권위와 질서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5월 3일부터 학생들은 소르본대를 점거해 폭력시위에 들어갔다. 노조와 연대해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다. 유혈이 낭자했다. '68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파장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소르본대는 '68혁명' 이후 급속히 몰락했다. 프랑스 정부는 71년 모든 대학을 국립화하고 평준화시켜 버렸다. 대학 이름도 총장들의 제비뽑기로 번호가 정해졌다. 소르본대는 4대학, 낭테르대는 10대학이 됐다. 소르본대는 이제 고교 졸업시험(바칼로레아)만 통과하면 150km 이내에 거주하는 누구나 공짜로 들어가는 평범한 대학이다.

2006년 3월 프랑스 정부의 최초고용계약(CPE)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소르본대를 중심으로 불붙고 있다. 입사 2년 이내의 젊은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하려는 데 반발해 50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노학 연계 조짐도 보인다. 얼핏 보면 기득권이나 챙기려는 젊은층의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68혁명'이 보여줬듯 '밥그릇'의 발화력은 강하다. 800년 역사의 소르본대가 갖는 무게도 아직은 만만찮다. 21세기의 소르본대가 이번엔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궁금하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