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슈크로프트 전 미국 법무장관 "나 로비스트 됐다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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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테러 전략을 지휘하던 존 애슈크로프트(63.사진) 전 법무장관이 워싱턴의 로비스트가 됐다.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스캔들로 집권 공화당의 이미지가 떨어졌는데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각료 출신이 로비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애슈크로프트 전 장관이 자신은 아브라모프와는 다른 '깨끗한 로비스트'라고 주장하며 국토안보 예산과 관련한 사업을 따내려는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신문은 "애슈크로프트가 지난해 9월 공화당 인사들을 모아 사무실을 차렸다"며 "그는 부시 정권의 장관 출신 중 첫 로비스트이며, 전직 법무장관 중에서도 첫 로비스트가 됐다"고 소개했다.

30년간 공직생활을 한 애슈크로프트는 재테크에 별로 밝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재산은 50만~150만 달러. 미국 고위층 인사의 재산으론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는 로비스트가 된 데 대해 "그동안 공직생활을 하느라 바친 시간에 대한 재정적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객들은 가장 청렴결백한 로비스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부에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정부와 관련된 사업을 하려는 이들을 돕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애슈크로프트가 지금까지 확보한 고객은 21개 업체에 이른다. 이들 중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은 애슈크로프트를 로비스트로 고용한 지 한 달 만에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 경쟁업체인 '시벨 시스템'을 58억 달러에 인수했다. 장관 시절 그는 오라클의 시벨 시스템 인수에 반대했으나 로비스트가 되면서 애초의 생각을 바꾼 것이다.

그는 장관 자리에 있을 때 법무부와 수백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던 소비자 데이터 중개회사 '초이스 포인트'를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애슈크로프트 측이 먼저 접촉해 왔다"며 "그는 우리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가 소비자 데이터를 테러 감시 수단으로 자주 활용하고 있으므로 대테러 작전을 지휘하던 애슈크로프트의 쓰임새가 많다는 뜻이다.

애슈크로프트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의 피뢰침이 되겠다"며 회계부정 등 혐의로 기소된 엔론.월드컴의 최고경영진을 법률적으로 돕는 활동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행정부의 전직 최고 법집행 담당자가 로비 세계의 심장부로 뛰어든 건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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