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액면 분할에도 목표주가 줄줄이 하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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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과 1일. 각각 하루 동안 삼성전자 주가 흐름은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었다. 오전 장 초반 주가가 상승하면 기다렸다는 듯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오후 증시 마감을 앞두고 주가는 다시 제자리. 삼성전자가 주식 한 주를 50주로 쪼개는 액면 분할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이후 이틀 사이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50대 1 주식 분할 발표에도 삼성전자 주가 제자리 #개인이 사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팔아치워 #아이폰 X 부진, 원화 강세에 올 1분기 실적 먹구름 #그래도 “주가 반등 여력 있다” 전망

삼성전자 주식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투자자의 고민은 주가 흐름으로도 드러난다. 전문가의 조언은 하나로 모인다. 액면 분할 대신 실적을 보라.

50대 1 액면 분할 발표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하루 사이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하는 흐름을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 금융공학연구소. [연합뉴스]

50대 1 액면 분할 발표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하루 사이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하는 흐름을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 금융공학연구소. [연합뉴스]

주식 분할은 단기 호재일 뿐 주가 방향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KB증권은 200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액면 분할을 마친 667개 종목을 분석했다. 이들 종목의 주가는 공시 후 52일이 되는 시점에 평균 13.0%(공시일 종가와 비교)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을 걸었다.

6개월이 지나면 주가는 공시일과 견줘 평균 4.3% 상승에 그쳤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액면 분할은 주가에 단기간만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라며 “결국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지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액면 분할 선언 이후 가장 뚜렷한 움직임은 주가가 아닌 ‘손바뀜’이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과거 SK텔레콤과 제일기획, 아모레퍼시픽 액면 분할 때도 기관과 외국인은 팔고 개인은 샀고, 지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주당 가격이 현재 주가 기준 5만원 안팎으로 내려가면서 개인은 사기 쉬워지지만, 기관ㆍ외국인 투자자에겐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하루 사이 개인 투자자는 삼성전자 주식 702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개인 투자자가 몰려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 외국인(-6167억원)과 기관(-1131억원)이 물량을 털어냈다.

달러 약세로 원화가치가 오르며 국내 반도체 기업 이익 전망치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있다. [중앙포토]

달러 약세로 원화가치가 오르며 국내 반도체 기업 이익 전망치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있다. [중앙포토]

1일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하루 전보다 0.16%(4000원) 하락하며 249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의 상승분(0.2%, 5000원)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액면 분할을 공시했던 다른 기업이 누렸던 ‘반짝 호황’도 삼성전자는 만끽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일 287만60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6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에 먹구름이 끼면서다.

이날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325만원에서 310만원으로 낮췄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65조9000억원에서 60조5000억원으로 내려 잡았다. 같은 날 현대차투자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도 나란히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340만원에서 330만원으로 조정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 X의 1분기 물량 감소와 원화 강세로 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지난달에도 신한금융투자(350만→320만원), 키움증권(380만→340만원), 하이투자증권(330만→320만원) 등이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0~11월 국내 증권업계에 팽배했던 낙관론은 한풀 꺾였다. 대신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290만→280만원)와 달리 국내 증권사 모두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300만원 이상으로 잡았다. ‘매수(비중 확대)’ 의견도 유지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주춤하지만 상승 여력은 아직 충분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주가가 주춤하지만 상승 여력은 아직 충분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추가 상승의 여지는 충분하단 분석 덕분이다. 지난해와 같은 급등세까진 아니더라도 말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이사는 “원화 상승과 지난해 삼성전자의 주가 수익률, 디스플레이 부분의 실적 우려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인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등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았고, 올해도 이익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가의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이사는 “디스플레이 부문의 ‘방해 요소’를 사라지게 할 만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상승, 애플 신제품 출시 등 변화가 있어야 수급 문제 해소와 주가 반등이 가능하겠다”고 전망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목표 주가(target price)=각 증권사가 개별 종목을 평가해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주가 전망치. 6개월 또는 12개월 이내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주가를 뜻한다. 기업의 실적에 걸맞은 주가 수준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 주가가 목표 주가보다 낮으면 주식을 사라는 ‘매수’, 높으면 주식을 팔라는 ‘매도’ 의견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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