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일요일은 '일'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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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2시는 좀 게을러져도 좋은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설거지 안 해?"

감자와 닭고기를 듬뿍 넣은 카레라이스로 막 점심을 먹은 뒤다. 나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어제 읽다 만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뒤적인다. 일요일 오후 2시를 나는 사랑한다. 배부름과 나른함이 3월의 햇살처럼 온몸을 간질이는 시간. 나는 책을 읽으며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맞벌이 부부가 제대로 청소할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뿐이다. 아내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다. 손등으로 입을 쓱 닦고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아내가 플러그를 꽂자 청소기도 아내처럼 활기차게 돌아간다. 윙윙거리는 청소기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도 어서 할 일을 해야지."

할 일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일요일 오후 2시다. 그것은 내게 '총리의 골프'처럼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만큼은 결코 양보하고 싶지 않다.

"설거지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

"뭐? 쉰다고?"

아내는 청소기를 끈다. 폭풍 전의 고요한 긴장이 집안 전체에 감돈다.

"자기 눈엔 나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나도 뭐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잠시만 쉬었다 곧 하겠다는 거지."

"책 읽는데 그렇게 돼? 그냥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해!"

아내는 다시 청소기를 켠다. 정말 나는 조금만 더 읽다가 설거지를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에마 보바리의 눈'에 빠져 '영국 해협을 건너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청소기를 다 돌린 아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비상사태다. 나는 얼른 책을 덮는다. 지금 내가 책이나 읽고 앉아 있을 시국이 아니다.

"설거지 내가 한댔잖아." "잘나신 당신은 책 읽어야지."

아내가 요리를 했으니 당연히 설거지는 내 일이다. 게다가 아내는 청소기까지 돌리지 않았는가. 만일 설거지마저 아내가 한다면 나는 교양은커녕 인간성 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판이다. 자칫하면 남편 직을 사임해야 할지 모를 위기다.

위기의 남편에게도 사정은 있다. 오전에 혼자 성당에 다녀왔다. 빨리 걸어도 왕복 4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 심부름으로 할인점에 갔다 와야 했다. 게다가 주중에는 두 차례 술자리가 있었고 두 번 모두 과음했다. 몸도 마음도 안정과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설거지나 청소는 언제든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사태다.

"그러면 난 걸레질할게."

나는 걸레를 빨아 거실을 닦기 시작한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거실을 닦으며 나는 생각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양보해야 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거실과 안방과 아이들 방의 걸레질을 마쳤다. 오후 4시. 이제는 좀 게을러져도 좋은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욕실이 더럽던데."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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