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청와대서 … 노 대통령 - 정 의장 무슨 얘기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2시40분부터 2시간에 걸쳐 진행된 면담에서 정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당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 점부터 먼저 설명했다. 고위 당직자들에 따르면 정 의장은 "대통령이 없는 동안 당은 내부의 의견 표명을 자제했고, 지도부도 널뛰기를 하지 않고 일관된 대오를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참 잘 된 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당에서 수집한 민심과 당내 여론을 들어 이해찬 총리의 거취가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지방선거는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 상당한 신뢰를 보였다고 한다. 책임 총리제에서 이 총리가 보여준 국정 장악력을 언급하며 그를 대신할 만한 후임자를 고르는 데 대한 고충도 토로했다는 것이다.

특히 분권형 총리, 책임 총리 시스템이 흔들릴 가능성을 고심했다고 한다. 정 의장은 15일 확대 간부회의에서 "대통령은 총리를 유임시키는 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또 '내기 골프'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심경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은 이 총리 문제를 법률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당은 도의적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흔쾌한 수락은 면담이 후반으로 향하면서 나왔다. 배석했던 이병완 비서실장이 총리의 사의 수리 발표를 늦추는 방안을 건의했지만, 바로 공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정 의장은 "당.정.청은 한몸 공동체"라며 "(총리가 교체돼도) 당은 국정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이번 면담은 이전까지와는 달리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가 아닌 '경청하며 대화하는' 자리였다는 분석도 여당에서 나온다.

면담에서 후임 총리에 대한 문제는 심도 있게 거론되지는 않았다고 한 고위 당직자가 전했다. 국정 운영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지만, 후임자를 물색하는 단계의 대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면담이 끝난 뒤 정 의장은 방문이 예정됐던 서울 신월동의 어린이 공부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우상호 대변인에게 전화해 면담 내용을 공개토록 지시했다. 이후 정 의장은 이 총리에게 전화도 했다. "그간 마음 고생이 많으셨다. 이제 심신을 달래시라"고 위로했다. 이 총리는 "정신적인 부담에서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정 의장은 당론을 무기로 노 대통령의 이 총리 유임 의지를 후퇴시켰다. 지금까지 분권형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았던 이 총리에게 쏠렸던 정치적 무게가 정 의장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총리 문제가 일단락되며 당도 급속하게 지방선거 체제로 전열을 정비 중이다. 다음주부터 진대제 정통부 장관, 오영교 행자부 장관 등의 입당식을 진행하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영입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정 의장에게 쏠린 무게추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라는 고비가 남아 있다. 패배할 경우 청와대까지 설득해 선거에 '올인'한 정 의장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당내 친노 직계의 반발로 정 의장은 리더십 위기를 겪게 된다. 승리한다면 여권 2인자에서 검증 받은 대권 주자로 승격된다. 여권의 총리 거취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정 의장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