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뤄시허, 흑의 안방에서 살아버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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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하이라이트>
○ . 뤄시허 9단(중국) ● . 이창호 9단(한국)

결혼식장에서 본 이세돌 9단의 모습이 화사했다. 스물세 살 아름다운 젊은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세돌은 이튿날 신혼여행을 미룬 채 춘란배 세계대회가 열리는 베이징(北京)으로 돌아가 뤄시허(羅洗河) 9단을 불계로 꺾었다. 16강전 8판 중 가장 먼저 끝났다.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의 패배를 갚은 것이다. 번개처럼 결혼하고, 번개처럼 이기고… 빠르고 결단력 좋은 이세돌의 황금기를 지금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1(157~165)=뤄시허의 백?는 최후의 노림수다. 우변 흑집의 빈틈을 노리며 그 속에서 살아버리겠다는 무서운 노림수다.

이창호 9단은 157로 뿌리를 끊는다. 당연한 응수지만 초읽기의 숨가쁨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158 따내자 159 단수한다. 한데 너무도 뻔해 보이는 이 159가 중대한 실수일 줄이야.

고대하던 기회를 잡은 뤄시허가 눈을 번쩍 뜨며 160으로 젖혀온다. 큰일이다. 이 백이 흑의 안방에서 통째 살아버린다면 역전 아니겠는가.

<참고도>=159는 흑1로 바로 젖혀야 했다. 백4는 흑5로 그만. 이 그림은 백이 발버둥쳐도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장면 2(166~178)=159의 실수 때문에 166과 168이 선수가 되었다. 게다가 170이 좋은 수. 검토실에선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A와 B가 맞보기여서 대마가 살아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역전일까. 뤄시허가 이창호를 2대 0으로 꺾고 우승한다는 얘기인가. 검토실은 계산을 하느라 부산해졌다.

이창호 9단은 묵묵히 바둑을 두어나가고 있다. 마지막 큰 곳인 171의 곳을 차지했다는 게 한 가닥 위안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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