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부자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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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부자서신’- 고운기(1961∼ )

―마흔 중반의 아들이 여든 가까운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의 일부분을 들려주었다. 내게도 느낌이 없을 수 없어 몇 자 적는다.

바다 가까운 마을에 사는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맡에 아직도 바다를 두고 있다
가슴으로 앓았던
바다의 생리와, 부서지고 되돌아가는 파도와, 수평선에서 넘치지 않는 수위와
그래서 머리에 담겨진 바래지 않는 기억

사막에서 별을 헤는 아들의 편지는 끊겼다

답신 없는 편지가 몇 번이고 바닷물을 퍼다 날랐다
우편배달부의 가방이 하냥 물에 젖는다

바다가 그랬듯이
언젠가 사막이
사막의 모래가 그 가방을 채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다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 아들의 답신은 영 신통찮다. 아버지는 한통의 바닷물을 싣고 단봉낙타가 되어 모래바람을 헤치며 아들에게 간다. 그러나 사막으로부터 너무나 먼 곳 아버지의 푸른 심해(深海)를 아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언제일까, 아들이 가슴속 한 줌 모래 사막을 덜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될 때는.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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