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벤처 다시 거품 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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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갖고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상은 나라 경제를 위해 환영할 일이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의 벤처 거품이 또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현행 제도에서 벤처 확인을 받으려면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거나 ▶매출의 5~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신기술 평가에서 우수 판정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말 벤처기업 9732개 중 벤처캐피털 투자로 벤처 인증을 받은 업체는 330개로 3.4%밖에 안 된다. 벤처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2001년 말 벤처 투자 기업 비중이 13.6%가 된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나머지는 정부가 기술이 우수하다고 평가했거나 연구개발 실적을 인정해 벤처로 확인해 준 경우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성섭 수석연구원은 "벤처캐피털로부터 시장 성공 가능성을 평가받지 않은 채 연구개발 투자비나 신기술 평가로 벤처 확인을 받은 기업이 늘어난 것은 우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기업이 살아남지 못하면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린다. 그래서 그 기업의 기술.인력.재무상태 등은 물론 경영자의 자질까지 엄격하게 평가한다.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회사가 많으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가 인정한 벤처는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정 회사가 보유한 기술이 첨단 기술인지를 판단할 실력을 가진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또 기술은 워낙 빨리 발전하기 때문에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도 방심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정부는 벤처 확인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벤처 특별법을 개정해 올 상반기 중 시행하기로 했지만, 이미 거품이 낀 상태에서 뒷북을 치는 느낌이다. 정부는 벤처 숫자를 늘리기보다 벤처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장을 제공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차진용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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