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운명…정성 다 했다"-농아학교서 장한 어버이 상 받는 정기분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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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벙어리 자식을 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지요. 내게 지워진 운명이거니 생각하고 정성 다해 키웠습니다.』
3남2녀 중 농아로 태어난 2남1녀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정기분씨(57·여·서울면목1동505의l6)는『장애 자녀는 우선 집안에서 제대로 대접해 주어야 밝게 건강하게 자라더라』고 털어놓았다. 정씨와 남편 문재덕씨(66)사이의 장성한 세 자녀 말고도 맏며느리와 두 손녀 등 6명이 농아로 장남(문항희·35·회사원)부터 둘째 손녀(문원정·7·서울농아학교 유치부)까지 모두 서울농아학교 동창생들. 이들을 잘 뒷바라지 해 정씨는 오는9일 상오11시 맏손녀 문진양(12) 의 농아학교 초등부졸업식장에서「장한 어버이 상」을 받게됐다.
『맏이는 내성적이면서도 자존심이 강해 어릴 때 벙어리라고 놀리는 같은 또래 꼬마들과 툭하면 싸웠어요.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 될 때마다「병신집안」소리에 울기도 많이 했지요』
항희는 농아학교에 들어간 뒤 글도 깨우치고 제화기술을 익혀 지금은 제화공장 주임.
둘째아들 환배씨는 75년 농아학교 고등부 졸업과 함께 충남 공주로 낙향, 농사에 뛰어든 뒤 10여 년간 악전고투 끝에 과수원(6천평)과 전답(2천평)에 한우 20마리를 기르는 농장주로 성공했다.
둘째딸 재옥양(26)은 미싱자수에 재능을 보여 가내공장에 자봉틀 26대를 들여놓고 수출용 침대 덮개를 생산해내는 어엿한 처녀사장강.『자식들이 다 자라 한숨 돌리려는데 맏아들이 지난76, 81년에 낳은 두 손녀(진·원정양)가 또 농아였지요. 기가 막혔지만 남부럽지 않게 키우리라 마음을 다져먹었어요』
정씨는 농아인 맏며느리 이유순씨(36)가 젖먹이를 안고 자다가 아기가 깨어 울어도 소리를 듣지 못하자 며느리의 발목에 노끈을 묶어 자신의 방에 연결, 아기우는 소리가 들리면 잡아당겨 며느리를 깨워주곤 했다고 말했다.
『가족은 물론 장애자 본인도 조금도 주눅들 필요없어요』정씨의 밝은 표정에서는「장한 어버이」가 되기까지 한때 봉투장사·떡 장사도 마다 않은 역경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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