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달린 한 ㆍ중 외교차관 전략대화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둘러싼 양국 간 입장 차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일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16개월 만에 열린 제8차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중국은 한국 측에 (사드 관련) 정치적 결단을 보여줄 것을 희망했다”고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16개월 만에 만났지만 사드 입장 차만 재확인 #韓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 노력하자" #中 "사드 관련 한국이 정치적 결단 보여달라"

이와 관련, 한국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은 양국간 경제·문화·인적교류 분야 협력에서 어려움이 해소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중국의 제재 해제를,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회담 시작 때부터 감지됐다. 장예쑤이(張業遂)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모두 발언에서 “한·중 관계를 제약하는 주요 장애물이 아직 제거되지 못했다”며 “소통을 한층 강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잘 모색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이고 건강한 발전궤도에 다시 올릴 필요가 있다”고 사드 철수를 압박했다. 이에 임 차관은 “좋은 시작은 성공의 반”이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의 대중 외교 채널 정상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의 사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이날 오후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겅솽 대변인은 “대화에서 사드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진솔하게 교환했다”고 평가했지만, 한국 측이 정치적 결단을 보여주고 약속을 준수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0일 오전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양제츠 국무위원을 예방하고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베이징특파원단]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0일 오전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양제츠 국무위원을 예방하고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베이징특파원단]

전략대화에 앞서 임 차관은 양제츠(楊洁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났다. 양 국무위원은 “한·중 수교 25년 동안 거둔 많은 성과를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양국 수교의 초심을 잊지 말고 상대의 주요 관심사를 서로 존중하고, 공동의 이익을 함께 지켜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 차관은 “한·중 양국 관계를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이날 차관 대화에서는 다음 달 초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기간 중 열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도 이뤄졌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중국은 기존 사드 장애론과 소통 강화론을 강조했고, 한국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의지를 밝혔다”며 “한국이 전략대화 체제를 강조하는 등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기 위해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날 양국 간 대화가 평행선을 보임에 따라 한국 외교부는 당장 해법을 찾기 어려운 사드 보다 중국과 대화 채널 정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6월 첫 정상회담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NSC)과 중국 외교 국무위원 간 대화, 2+2(외교와 국방 장관 급) 외교안보대화, 국책 연구기관 합동전략대화, 정당간 정책 대화 등 4개의 전략대화 채널 개설에 합의했지만 사드 문제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g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