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일 없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외동은 귀한 편이었습니다. 그 시절 큰아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과도한 지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시대를 돌아보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 형제는 공부를 잘한다 해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보내고, 오빠는 땅을 팔아서라도 대학에 보내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입니다. 요즈음 우리 눈으로 보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 장면의 속내에는, 사회보장 제도가 허술하던 시절에 좀 더 확률 높은 곳으로 자신의 노후를 위한 사보험을 꿈꾸는 부모의 생존 전략이 엿보입니다.

근육을 기반으로 한, 남자에게 유리했던 산업시대의 부모들은 가장 사회적 생존 확률이 높은 곳에 자신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이 자원이 모두 성공적으로 회수될 것이라 보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70%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통과의례처럼 대학을 가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대학생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데다, 국제 경쟁에 인구 증가의 정체, 그리고 무섭게 다가오는 자동화의 물결까지 일자리는 줄어들기만 하고 도무지 늘 것 같지 않은 세상이 다가옵니다.

예전 분들의 원래 계산대로라면 투자한 자금이 나의 노후에 대한 버팀목으로 돌아와야 마땅할 일인데, 오히려 캥거루족이라는 이름으로 성년이 된 이후에도 자식들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죠. 위로는 그 전 세대의 부모를 모셔야 하고, 아래의 자식들에 대한 지원도 그 종점을 알 수 없는 지금 부모 세대의 당혹스러운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 자라 이제 제 밥값을 한다는 우리네 오래된 표현처럼, 시간이 되면 날아올라 부모의 둥지를 떠나는 새들의 당연한 섭리가 부럽게 느껴지는 세상은 잘은 몰라도 정상은 아닌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개인의 영역으로 각자 준비하기를 독려받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복지 시스템의 개혁이라는 요구로 구체화될 것입니다. 자식이 책임지지 못한다면 나라라도 돌봐달라 부탁할 터이니까요.

이러한 개혁을 통해서도 적응하기 어려워지는 경우에는, 잘 키울 수 없기에 아예 낳지 않는 극단적 선택을 사회 속 각 개체가 하는 일까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회가 존립하기 어려워지는 선택을 구성원이 하는 것이죠.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생명체의 본능마저 거스르는 결단이 만들어지는 원인은 우리 인간이 “충분히”가 아니라 “아주 조금” 똑똑하기 때문이라는 슬픈 통찰에 가슴이 아픈 1인입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