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이산가족」통곡의 재회|끊기고 무너진 길 사흘만에 일부 뚫려|물빠진집에 뱀·개구리떼|젖은곡식 길에 널어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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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흘동안 물에 갇혀있다 집에 돌아간 부여군규암면 일부 주민들은 안방까지 기어들어온 뱀·개구리등에 쫓겨 노숙.
또 제방이 터져 71가구중 30가구가 물에 잠긴 논산군 성동면 삼호리 주민 3백여명은 금강변 폭3m 둑위에 천막을 쳐놓고 생활하면서 틈틈이 통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재도구를 건져내고 있는데 식수가 전혀 없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비가 멎고 날씨가 다소 갠 24일 서천군일대 농민들이 홍수로 젖은 나락과 쌀등을 말리기 위해 도로 곳곳에 몇 가마씩을 널어놓는 바람에 아스팔트국도는 곡식·나락등으로 수백m씩 뒤덮이는 진풍경을 이뤘다.
특허 온 마을이 물에 잠기는 수난을 겪은 서천읍 두왕리 일대 도로는 주민들이 내다 말리는 나락이 2∼3㎞까지 이어졌으며 이곳을 지나던 차량들이 이를 피해가느라 좁은 도로가 큰 혼잡을 빚기도.
서천읍내 싸전과 구멍가게·슈피마킷등도 물에 젖은 쌀과 상품들을 점포밖 도로변에 내놓고 말려 읍내 도로는 마치 시장바닥같은 어수선한 분위기.
변두리 쌀가게에서는 물에 불은 쌀을 내놓고 한가마에 1만∼2만원정도의 헐값으로 팔기도.
○…전화가 불통인 상황에서 연락망 구성에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큰몫을 해냈다.
12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부여등 3개군에 흩어져 서로 연락을 취하며 응급사항과 조난구조요청을 관계기관과 적십자사 충남지사에 수시로 연락, 구조와 인명피해를 줄이는데 큰 활약을 했다.
○…고립됐던 서천·부여읍일대의 교통이 타지로 통하는 도로의 물이 빠지면서 24일부터 대부분 재개돼 외부에서 배달되는 신문·우유등 기타 생필품이 사흘만에 주민들 손에 들어갔다.
논산천 둑이 무너지며 넘쳐흘러 최고2m깊이까지 잠겼던 논산∼부여간 성동들 일대 20여만평의 농경지가 24일 상오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 낮12시쯤 들을 가로지르는 2차선도로가 윤곽을 나타내 사흘만에 승용차를 제외한 버스·트럭등 대형차량들의 통행이 가능해졌다.
또 부여에서 홍산을 거쳐 서천에 이르는 도로도 24일 상오부터 물이 빠지면서 산사태로 흘러내린 일부 구간의 흙더미를 치우는 작업을 마친 하오3시쯤부터 길이 틔었다.
23일 고향의 수해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달려왔다가 길이 막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김치홍씨 (31)는 24일하오 화물트럭편으로 성동들을 극적으로 건너무사한 가족들을 만나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부여·서천읍 주민들은 사흘만에 받아든 신문에 물에 잠긴 마을사진과 자신들의 이야기가 크게 보도된 것을 서로 번갈아 보며 악몽을 되새겼다.
○…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서천군 판교면 우나리 속칭 검은절 마을은 22일 상오 산사태로 4가구가 흔적도 없이 흙더미에 덮였으며 나머지 3채의 집도 서까래와 기둥만이 앙상하게 남아있는등 온 마을이 폐허로 됐다.
특히 산사태로 윤남병씨(40·판교면산업계장)의 아버지등 3명이 숨진 가운데 이 마을에 이르는 농로 곳곳이 유실돼 경운기는 물론 자전거통행마저 어려운 형편이어서 이 마을 생존자 10여명은 장례조차 치를 겨를도 없이 3∼4㎞나 떨어진 면사무소를 오가며 쌀과 라면등 구호품을 지게로 지어다 연명하고 있다.
판교면일대의 이런 상황은 인근 마대리등 계곡근처에 위치한 산골 자연마을도 마찬가지여서 산골주민들에 대한 구호품 수송대책이 시급한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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