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3711억 달러 곳간 넉넉…“한·일 통화스와프 매달릴 이유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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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갈등으로 일본이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통보하자 한국 외환당국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유감”을 표명하고 협상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굳이 소녀상 문제를 놓고 국민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 가며 통화스와프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 대화 중단돼도 큰 타격 없어
통화스와프 절반 중국 쏠린 건 문제
“한·일 장기적으론 복원이 유리”

여기엔 한국의 외환보유액 등 곳간 상황이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는 점이 고려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711억 달러다. 1997년 외환위기(300억 달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0억 달러) 때에 비해 달러가 많이 쌓여 있다.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단기외채(만기 1년 미만 외채) 비중도 지난해 9월 현재 27.9%로 97년(36%), 2008년(47%)에 비해 양호하다.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현재 보유 중인 통화스와프가 종료된 게 아닌 만큼 큰 영향이 없다”며 “통와스와프 만기가 지난해 종료된 말레이시아와 사실상 연장에 합의했고 아랍에미리트와도 연장 논의를 벌이고 있어 통화스와프 규모는 다시 늘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호재도 있다. 일본 언론은 오는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및 한·중·일·아세안 재무장관 회의에서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가입국(한·중·일+아세안 10개 국) 합의만으로 꺼내 쓸 수 있는 기금 비율을 현재 30%에서 40%로 늘릴 거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위기 발생 시 CMI 출자금(384억 달러)의 40%인 154억 달러를 활용할 수 있다. 나머지 60%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해 꺼내 쓸 수 있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통화스와프의 ‘중국 쏠림’을 해소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체결한 통화스와프 총 규모는 1089억 달러(말레이시아·아랍에미리트 제외)인데 이 중 절반 을 중국(560억 달러)과 맺었다. 더구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장 통화스와프를 확충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위기가 닥치면 외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통화스와프를 다양화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인창 차관보는 “추후 일본이 원한다면 통화스와프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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