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강공이 여당주 명분 준다"-"서울대회연기" 결정 내린 신민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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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회문제로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하던 신민당이 8일 상오 회의를 하오회의에서 뒤집는 해프닝까지 벌이며 마침내 대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11월29일 서울대회가 무산되고 12월2일 민정당의 예산안단독통과에 의원직 사퇴서까지 낸후 국회를 뛰쳐나와 전략부재 속에 표류하던 신민당이 민정당의 개헌안 단독발의 보류라는 방침변경 시사를 틈타 겨우 대화국면 쪽으로 숨통을 조금 터 본 것이라고 하겠다.
지난주부터 단 1주일 동안 서울포함 전국대회실시→서울제외 지방대회실시→서울·지방대회연기→서울대회 실시→서울대회 연기까지 5, 6차례 뒤죽박죽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민정당의 강경책 앞에 별 뾰족한 대안을 못 세우고 있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상황을 보는 신민당내 각 계파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8일 하오의 뒤집기 회의에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우선 대화국면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민우 총재가 서울대회연기의 이니셔티브를 취했다.
이에 호응한 것이 서울대회의 무리한 개최에 그전부터 불만을 가져온 상도동쪽이었다. 서울대회개최를 주장해온 동교동계의 일부가 개최를 끝까지 주장했지만 서출출신 의원들의 서울대회 기피심리까지 겹쳐 대세를 반전시킬 수가 없었다.
서울대회를 강력히 주장하는 동교동 쪽의 분석은 정부·여당이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2월까지 끝내는 동기작전을 강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여당이 금년 말 또는 내년초에 단독 또는 군소 정당과 제휴해 공동발의하고 3월 개학 전에 국민투표까지 끝내려고 하는 이상 서울대회를 열어 저지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여당이 여론악화 때문에 단독발의 유보를 시사하고는 있지만 기본구상에는 변함이 없다고 본다.
그런 판국에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오직 장외투쟁을 강화하는 길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비록 서울대회가 당국의 장소사용 불허로 불발하더라도 정부·여당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다.
이에 반해 상도동 측은 정세를 그렇게 급박하게 보고있지 않은 것 같다. 상도동 안에서도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여당이 단독발의, 군소 정당 제휴 통과라는 무리수를 감행할 경우 내외의 엄청난 비판을 받을 뿐 아니라 통과된 개헌안의 정통성문제가 다시 대두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모험을 감수할 까닭이 없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고있다. 현재로서는 개헌 선을 확보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단독통과를 강행할 만큼 여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서울대회를 굳이 연내에 강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민우 총재는 반드시 동절기 강행처리가 없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민당이 강공 수단을 택함으로써 민정당이 단독발의를 할 명분을 줄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따라서 민정당의 방침변화를 전략수정의 계기로 삼아 국면전환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더우기 당내 비주류가 양 김 노선에 불평을 제기한 것을 서울대회를 뒤집는 구실로 이용한 것 같다.
각 계파가 이처럼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서울대회연기를 받아들이는 표정들도 대조적이다. 동교동 쪽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3자가 합의하면 그대로 신민당의 당론으로 받아들여졌었는데 그것이 처음으로 뒤집힌 것이 불쾌하고, 그것도 충분한 협의 없이 사후통보를 받게된 것이 불만인 것이다.
상도동쪽은 서울대회연기라는 결과에는 불만이 없지만 3자 합의가 뒤집어진 과정에 대해서는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총재가 일단 대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를 상도동쪽이 지원함으로써 앞으로 여야간의 접촉이 다시 시작되고 대표회담까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회담이 이뤄지면 국회정상화 방안과 헌특 시한연장이 중점 논의 될 것은 틀림없다. 이 총재나 상도동 측은 국회를 중요한 투쟁의 장소로 삼아야 하고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므로 여야 대화가 순조로우면 오는 16일 재개되는 본회의에는 신민당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대화국면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신민당 측은 민정당의 단독발의 유보와 증거로 헌특 시한을 상당기간 연장할 것을 요구할 작정이다. 따라서 민정 당 이 이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가에 따라 정세는 달라질 수 있다.
민정당이 연초라도 단독발의 쪽으로 간다면 신민당으로서는 다시 일전을 외치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은 빤하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대회 연기 해프닝 속에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동안 순탄했던 이총재 와 두 김씨 3자 사이에 틈새가 생겼다는 점일 것이다.
이 총재가 이번에 이니셔티브를 취하긴 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독자영역의 구축으로까지 해석되기는 어려운 처지이다. 따라서 서울대회의 뒤집기 과정에서 생긴 불만이 당 지도부의 혼선에 대한 비판으로 커지면 일부 비주류측의 불평과 증폭되어 당내분란으로 발전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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