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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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명가의 김치 전시회가 서울 어느 백화점에서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대 가정대 실습실에서 칠순의 할머니들이 모여 「김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광경은 상상만해도 군침이 돈다.
여기저기선 노트를 들고 열심히 필기하는 여대생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의 식탁을 1천년동안이나 지배해온 반찬인데, 오늘 그 김치문화의 명맥은 옛날 같지 않다.
어느 소설엔 신혼주부가 친가에서 김치를 나르는 얘기가 있었다. 소설이 아니라도 이것은 요즘 시속의 한 면일 것이다.
전시회에 출품된 김치가 무려 1백60여 가지나 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하긴 소재와 지방과 솜씨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 김치의 묘미다.
삼국시대부터 기록에 남는 우리나라 김치는 신라, 고려 때까지도 나박김치와 동치미, 두 가지 뿐이었다. 이것이 임진왜란 전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다채로와지기 시작했다. 우선 고추 맛은 생선의 비린 맛을 다스려 김치의 델리커시가 깊고 넓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쓰께모노, 중국의 엄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작년 가을 한국과학기술원 유전공학센터 미생물공학연구실은 우리나라 김치의 성분을 분석해본 일이 있었다.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요구르트와의 젖산 비교에서 김치는 적게는 10배, 많게는 1백 배나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각종 미생물 2백 여가지가 작용해 우리 몸에 필요한 갖가지 아미노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치 풍속은 점점 퇴색해 요즘은 한국인의 김치 섭취량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김장의 분량이 80년대 초보다 10%나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도시의 경우 김치 고유의 맛보다 양념과 소재가 다양해지는 것이 특징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기무지(김치)붐」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조적인 현상이다. 일본 주부들이 지난해한국으로 「김장축제」 라는 이름으로 김장 관광을 온 일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김치 수출도 적지 않게 하는 모양이다.
가을이면 일본의 유명 신문들은 다투어 한국김치 특집도 한다. 일본사람만이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의 한국 식당에선 실제로 김치를 즐겨 먹는 서양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발효식품」 이란 점에선 서양사람들이라고 김치가 낯설 까닭이 없다.
그 김치가 지금은 가문의 별미도, 지방의 특색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그나마 어깨 너머로 노트에 적은 여대생들의 김치 솜씨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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