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법의 개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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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어떤 대학교수는 대학에서 리포트를 내는 계절이 되면 지도 교수에게 책을 빌러 오는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고 했다.『도서관에 가도 책이 없다』는 게 학생들의 변이다.
학생들이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책도 도서관에 구비되지 않은 형편이라면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들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봉급이나 연구비를 쪼개어 각자「개인 도서관」을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학문풍토요, 도서관의 실상이다.
어디 그 뿐인가. 도서관은 이제「온갖 도서·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 공중이 열람하는」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고, 책보다는「자리」를 요구하는 학생들의「공부방」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이런 학구열을 결코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원천인 도서관이 단순한 학습 실로 만 기능 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커다란 손실이며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이 이처럼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 마디로 정책 당국의 도서관에 대한 인식부족에 있다. 그것은 1963년에 제정되어 거의 사문서화 되다시피 한 도서관법이 아직도 개 정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보도(중앙일보 23일자)에 따르면 도서관계와 출판계의 숙원인 이 도서관법의 개 정이 올해 안에는 실현되리라고 한다. 문교부가 대학 및 각급 학교, 그리고 관계 기관에 도서관법 개정자료 수집을 끝내는 대로 곧 개 정 준비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도서관법 개 정의 핵심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의 변모에 부응하는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의 평생교육을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 단체의 공공도서관 설치를「권고」에서「의무」규정으로 바꾸는 것이며, 세 째는 도서관 직원의 전문성과 자질 향상을 위해 사서 직의 자격과 양성 규정을 신설하고 국가 차원에서 도서관을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도서관 발전 위원회(가칭)를 두며, 네 째는 국립중앙 도서관이 중추가 되어 전국의 도서관들이 자료 및 도서의 횡적 이동이 가능한 협력 망 구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단체는 2백26 지역에 이르고 있으나 공공 도서관 수는 국·공립을 합쳐 꼭 절반인 1백13개에 불과하다. 이것을 의무화하면 그만큼 예산의 반영이 따라야 하는데 그 재원조달이 어렵다는 것이 문교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권고 규정이 실제로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유명무실한 규정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의지만 있다면 일단 이를 의무화 해 두고 연차계획을 세워 점진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재의 도서관제도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은 대부분의 도서관 책임자들이 도서관과 무관한 비전문인들이며, 사서 직 마저 일반직 급에 포함시켜 그 전문성을 살릴 수 없는데 있다. 구미 대학도서관의 라이브러리언(사서)은 대부분 교수와 같은 지위와 봉급을 받고 사회적 인식도 그만큼 높다. 따라서 사서의 지위향상과 전문성을 살리지 않고는 도서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밖에도 도서 구입 비, 장서 수와 이에 따른 질과 양, 소장자료의 컴퓨터 화 등 우리나라 도서관이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제들을 도서관법 개 정으로 하나하나 물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자원이 없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길러야 하고, 그러자면 도서관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이 몸에 배어야 한다.
따라서 도서관법의 개 정은 빠를수록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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