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찾은 오바마 "쿠바 잘 지냈습니까? 3시간만에 왔다"

중앙일보

입력

88년 만에 쿠바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에게 쿠바인들은 연호로 환영했다.

20일 오후(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 원)을 타고 입국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찾은 국제적 관광지 아바나의 구시가지. 포석이 깔린 스페인풍 거리에 빗속에 우산을 받쳐 쓴 오바마 일행이 나타나자 경찰의 통제 속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쿠바인들이 “USA” “오바마”를 외쳤다. 한 남성은 “쿠바 방문을 환영합니다.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소리쳤고, 건물 발코니에 나온 한 여성은 오바마 일행에게 박수를 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에 손을 들어 인사하는 노 타이 차림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환호가 이어졌다. NYT는 “오바마 대통령이 도착했던 이날 호텔 바텐더로부터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서 오바마 얘기가 계속됐다”고 전했다.

쿠바와의 우호 관계를 새로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바나 2박3일은 ‘1호 가족’의 관광으로 시작됐다. 구시가지 관광에는 미셸 여사와 딸 말리아ㆍ사샤는 물론이고 장모 마리안 로빈슨까지 동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쿠바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쿠바에 왔을 때 전함을 타고 사흘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3시간 만에 왔다”며 “에어포스 원이 쿠바에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보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만들고 쿠바 국민들과 직접 접촉하며 양국 국민들의 새로운 연대를 만드는 역사적 방문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쿠바식 스페인어로 “쿠바 잘 지냈습니까?(Que bola Cuba?, 케 볼라 쿠바?)”라는 소감을 트위터에 올린 뒤 “방금 도착했다. 쿠바 국민들을 만나 직접 얘기를 듣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썼다. 쿠바 방문단에는 미국 상ㆍ하원 의원 40여명과 제록스ㆍ페이팔 등의 기업인 10여명이 포함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쿠바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기념비에 헌화한 뒤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이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쿠바 외무부의 미국 담당관인 호세피나 비달은 “(쿠바 혁명을 도운) 체 게바라가 살아있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CNN에 밝혔다.

그러나 쿠바 정부의 반체제 인사 단속은 오히려 강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수시간 전 아바나 시내에서 열리던 인권단체인 ‘백의의 여성들’의 반정부 시위는 경찰의 봉쇄로 중단됐다. 정치범의 가족들인 여성 시위대는 전단을 뿌리다 현장에서 체포돼 버스에 실려 갔다. 22일 미국ㆍ쿠바의 친선야구 경기는 당국이 사전에 지정한 인사들에게만 관람이 허용된다.

쿠바 국영 언론사의 한 기자는 “2주전 소셜미디어에 오바마 대통령과 관련된 어떤 글도 올리지 말며 외국 언론도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 받았다”며 NYT에 정부의 언론 검열을 귀띔했다. 쿠바 당국은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지 일대의 도로를 재포장하고 시가지와 야구장에 페인트를 칠하며 대대적인 단장 작업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철통 경계도 계속됐다. 현지의 정호현 한ㆍ쿠바교류협회 협력실장은 “시내 곳곳에서 차량 통행을 전면 차단해 도보로만 다니도록 했다. 미국 대통령이 오니 거리가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쿠바 당국은 21일부터 시내 일부 건물의 출입을 막아 현지에 진출해 있는 코트라도 사무실을 비운다고 다른 인사가 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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