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와 함께 문 닫는 병설유치원…‘출산 장려’복지부 정책과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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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둘째 아이를 낳을 계획인데 학교 통폐합이라뇨. 학교가 없어지면 병설 유치원도 같이 없어질 텐데, 농촌에 살면 아이도 낳지 말라는 건가요.”

교육부, 학교 통폐합 확대 통보
강원도서만 3~5세 1500명 피해
“농촌선 아이도 낳지 말라는 건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사는 주부 홍승희(36·여)씨의 말이다. 부산에 살던 홍씨는 2013년 12월 군인인 남편을 따라 화천에 정착했다.

아들(8)을 둔 홍씨는 부산에 살 땐 어린이집과 태권도·미술학원을 보내는 데 월평균 50만원을 지출했다. 교육비가 많이 들자 둘째 낳는 걸 포기했지만 화천에 온 뒤 생각을 바꿨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덕분에 사교육비가 들지 않아서다. 화천 다목초등학교엔 3~5세 아이들이 다니는 병설 유치원도 있어 홍씨는 남편과 셋째까지 낳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런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최근 교육부가 전국 시·도교육청에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급속히 줄고 있으니 이에 맞춰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며 ‘적정 규모 학교 육성(소규모 학교 통폐합) 및 분교장 개편 권고 기준(안)’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권고 기준을 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면·벽지 60명, 읍 지역 120명, 도시 지역 240명 이하 학교가 통폐합 대상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강원도 220곳, 전남도 281곳, 경남도 177곳, 충북도 118곳이 통폐합 대상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초등학교 대부분이 병설 유치원을 함께 운영한다는 점이다. 통폐합으로 강원도 140곳, 전남도 182곳, 경남도 144곳, 충북도 107곳의 유치원이 함께 사라지면 강원도에서만 1500여 명의 아이가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해 학부모 홍승희씨는 “교육부의 이번 권고 기준은 소규모 학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찾아 농촌을 찾은 젊은이들의 출산을 차단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화천 다목초등학교 임정훈(51) 부장교사는 “학교가 통폐합되면 15㎞ 이상 떨어진 학교로 아이들을 옮겨야 하는데 그곳도 통폐합 대상이라 부모들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병설 유치원이 있는 소규모 학교가 통폐합으로 없어져 양육 환경이 나빠지면서 출산을 기피해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2009년 3월 학교가 폐교된 춘천시 남면의 경우가 그렇다. 이 지역에서는 2002년부터 폐교 전까지 4~13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폐교 이후 출생자가 줄더니 2014년 ‘0’명을 기록했다.

남면 가정리 이장 유연훈(60)씨는 “학교가 사라지자 아이 울음소리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했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계획(2016~2020년) 첫해를 맞아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8일 당정협의에서 “현재 1.2명 수준의 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교육부의 통폐합 권고 기준은 저출산 탈출 노력에 역행하는 ‘엇박자 행정’이란 지적을 받는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누리과정에 이은 지방 교육 황폐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춘천·광주광역시=박진호·김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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