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인사 유도장치, 운남동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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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광주광역시 운남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이가 이웃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은 대표적인 아파트촌이다. 운남주공 1~8단지를 비롯해 남양·삼성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다. 운남동 전체 1만1114세대 가운데 98%인 1만923세대가 아파트에 산다. 독립된 주거 공간의 특성상 옆 집에 누가 사는 지도 잘 모른다. 얼굴을 알더라도 가까운 이웃을 제외하고는 서로 인사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대부분 아파트 주민들에게 이웃은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실제 관계는 멀기만 하다.

1만923세대 아파트 밀집촌
절반 넘는 133개 동에 설치
음악과 함께 안내 멘트 방송
“이웃 가까워질 기회” 기대

 광주 운남동 주민들이 이런 마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아파트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음향 장치를 달아 이웃과 웃으며 인사하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전체 아파트 246개 동의 절반이 넘는 133개 동의 엘리베이터에 ‘인사 유도 음향 장치’를 달았다. 두 명 이상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바닥에 설치된 무게 인식 센서가 이를 감지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 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아침 출근 시간대와 점심 무렵, 저녁 퇴근 시간대에 맞춰 미리 녹음해 둔 목소리가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 나온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파이팅 넘치는 하루를 시작하자는 의미로 서로 인사 나누면 어떨까요” “활기찬 오후 맞이 인사를 나누세요” “피로가 가실 수 있는 눈웃음 어때요” 등이다.

 인사 유도 시스템은 현재 설치 공사를 모두 끝냈다. 이달 말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멘트 녹음 등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 장치를 통해 이웃끼리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공동체 정신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기대다.

 주민들과 주민센터 측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특성상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아이디어를 고민한 끝에 이런 장치를 달기로 결정했다. 광산구청으로부터 사업비 2900만원을 지원받아 업체에 장치 개발을 의뢰했다. 이 같은 인사 유도 음향 시스템이 아파트 단지에 대규모로 설치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인사 유도 장치의 설치비는 구청 측이 지원한다. 사후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주민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각 아파트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인삿말 내용을 바꿔 녹음할 수 있다. 운남주공아파트에 사는 이희(40·여)씨는 “서로 인사를 나누면 말문이 열리고 단절된 이웃 관계도 자연스럽게 트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운남동 주민들의 이웃 소통 노력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이웃에게 바라는 점을 적는 소통 게시판을 설치해 주목을 받았다. 자발적으로 책을 기증하고 이를 빌릴 땐 쪽지를 남기는 공중전화 부스 형태의 ‘길거리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김강식 운남동장은 “인사 유도 장치가 주민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사촌으로 거듭나는데 한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시민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지역내 다른 엘리베이터에도 확산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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