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누구한테 돈 주지?" 美공화당 성향 억만장자들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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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상이다.”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WB) 총재가 미국 공화당 후보 난립을 두고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스스로 “젭 부시를 위해 일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민주당에 후보가 난립했는데 올해는 정반대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보 난립은 자원의 조달과 배분, 활용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자원은 선거 자금과 유능한 선거 참모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드러내놓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억만장자들이 올해는 선뜻 선거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후보가 15명이나 난립해서다. 지지율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벤 카슨(신경외과 의사 출신)가 앞서고 있지만 부호들의 눈에 성이 차지 않는다. 트럼프가 지난달 16일까지 모금한 선거 자금은 583만 달러(약 66억4600만원)였다. 반면 군소 후보로 전락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1억2800만 달러나 거둬들였다.

FT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억만장자들 눈에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 출신이 아니다”고 했다. 부호들이 트럼프 지지율만을 보고 돈을 대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것도 부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호들이 부시에게 자금을 몰아주지도 못하고 있다. 부시가 지금까지 모금한 선거자금은 주로 플로리다주의 지지자들한테서 나왔다.

“공화당 지지 부호들이 철저하게 옆줄 밖에 서서 경기장을 살펴보고 있는 모양새”라고 FT는 평가했다. 그 바람에 현재까지 그들의 선거 자금 후원이 2012년 대선보다 훨씬 적다. 카지노 재벌 셀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샌즈 회장은 지난 대선 때 공화당에 9310만 달러(약 1061억3400만원)를 지원했다. 하지만 올해엔 41만 달러를 내놓았을 뿐이다. 20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지원하고 당내 경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기업 사냥꾼 애너트 사이먼스(고(故) 해럴드 사이먼스 부인)도 지난 대선에선 2710만 달러를 후원했으나 올해엔 20만 달러에 그쳤다. 전자 결제회사인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티엘과 부동산 재벌 도이렌드 페리(고 로버트 페리 부인)는 한술 더 떠 올해엔 한 푼도 내놓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에서 480만 달러와 2450만 달러를 각각 쾌척했다.

후보 진영에선 아우성이다. 이들한테서 뭉칫돈을 후원 받았다는 사실이 공화당내 여론을 움직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들은 돈을 아끼면서 몇몇 후보에게만 1만~10만 달러씩 수표를 끊어줬을 뿐이다.

FT는 “(소액 지원금이기는 하지만) 공화당 지지 억만장자들이 그나마 후원하는 후보는 부시와 플로리다 출신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라고 소개했다. 루비오는 쿠바 출신 소장파 정치인이다. 그가 모금한 후원금은 3283만 달러다. 모금액 순위에서 그는 부시, 텍사스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 벤 카슨에 이어 4위다. 경선 후보 15명 가운데 상위권에 속한다. 루비오는 지난달 30일 부시 지지자로 헤지펀드 엘리어트 매니지먼트의 창업자 폴 싱어의 지지를 얻었다. 싱어는 공화당 후원자들이 루비오에게 선거 자금을 지원하라고 요청해 부시에게 타격을 줬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공화당 지지 억만장자들
(2012년, 2015년 후원금, 달러)

카지노 재벌 셀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샌즈 회장)

2014년 2015년
9310만 41만

기업사냥꾼 애너트 사이먼스
(콘트란 대주주)

2710만 20만

부동산 재발 도이렌느 페리
(페리홈스 대주주)
2450만 0

헤지펀드 매니저 켄 그리핀
(시타델 회장)
280만 96만

IT부호 피터 티엘
(페이팔 창업자)
480만 0

금융 부호 존 리케츠
(TD아메리트레이드 설립자)
1320만 510만

자료: 파이낸셜타임스·오픈시크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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