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대마 횡사,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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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7보 (104~121)]
黑 . 서중휘 7단 白 . 김남훈 6단

흑▲로 나갔으나 104로 뚝 끊으니 대마는 속절없이 잡혔다. 흑의 서중휘 7단은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하변의 실리란 실리는 모두 챙기며 좌충우돌을 서슴지 않았다. 은연중 경적(輕敵)의 냄새마저 풍겼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했다.

형세는 백의 대우세. 흑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운동장만한 중앙에 비하면 죽어라 긁어모은 하변 흑집은 소소해 보인다. 더구나 113에서 백 선수. 김남훈 6단은 114로 두 점을 몰아 잡으며 황홀감에 젖어든다.

사실 김남훈이 좀 더 냉정했더라면 114보다는 '참고도 1'의 백 1을 선택했을 것이다. 실전의 114는 기분이야 끝내주는 곳이지만 크기로는 '참고도 1'이 월등했고 이 그림이라면 압승이었다. 그러나 김남훈은 판이 너무 좋아 시원하게 기분을 낸 것이다. 실전 심리상 이 대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117 때 118로 후퇴해 119를 허용한 것은 추위를 타도 너무 탔다는 평가다. 118을 두기 전에 119 자리에 한 번만 뻗어두었어도, 그리하여 흑 A와 교환만 해두었어도 승리는 요지부동이었을 것이다.

김남훈이 '참고도 2'의 백 1로 뻗지 못한 것은 흑 2의 역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두렵다기보다는 귀찮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백 3으로 막아 이 백이 공격당할 염려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김남훈은 대충 118로 물러서버렸다. 생각하면 118은 김남훈의 승부 기질에 숨어있는 중대한 결점을 보여주는 한 수이기도 하다. 자포자기에 빠져 있던 서중휘가 119로 젖히며 추격의 불을 댕기기 시작한다. 121도 날카롭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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