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산속에서 "살려주세요" 젊은 여성 비명소리…알고보니 취업준비생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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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2시11분 부산경찰청 112 상황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황령산 정상 봉수대 부근 산속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젊은 여성인 것 같다.”

신고를 접수한 상황실은 남부경찰서 등 황령산 인근 3개 경찰서에 긴급 출동 지령을 내렸다. 강력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당직 형사 30여 명을 비롯해 112타격대와 지구대 경찰 등 경찰관 70여 명이 현장으로 급히 달려나갔다. 현장에는 폭우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경찰관들은 산 속을 2시간 30분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때 산 속 도로에서 차량 1대가 내려가는 모습이 경찰관에게 목격됐다. 차량에는 20대 여성 4명이 타고 있었다. “비명소리 듣지 못했느냐”는 경찰관의 물음에 이들은 “못들었다”고 답했다.

수색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찰은 차량을 타고 내려간 여성들을 의심했다. 이들 중 누군가 비명을 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형사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차량을 운전한 이모(26ㆍ여)씨가 사실을 실토했다. “그 비명은 같이 있던 친구가 지른거에요.”
사정은 이랬다. 이씨 등 취업준비생 4명은 전날 밤 늦도록 놀다가 황령산 정상에 올라갔다. 정상 부근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한 곳이었다. 취업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이들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에 올랐다. 이 때 김모(28ㆍ여)씨가 “하느님 취업 좀 되게 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근처에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해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인근에서 산책 중이던 대학생 최모(21)씨가 김씨의 소리를 듣고 112에 신고하면서 경찰 대규모 수색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취업 때문에 소리를 지른 사실이 부끄러워 수색 중인 경찰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사건이 아니라 다행스럽지만 취업 문제로 힘들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게 돼 씁쓸하다”고 말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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