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고리」 과감히 끊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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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몇 해전 그 불행했던 시기에 타의로 대학강단을 떠나야했던 86명의 「해직교수」들이 원소속 대학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구체적인 시기나 절차가 확정된 것은 아니나 당국은 학내외 여건의 변화를 감안해 타대학·연구기관으로 한정했던 복직범위를 원래 소속했던 대학까지 넓혀 사실상 「원상회복」의 길을 터놓았다.
경위와 배경은 어떠하든 간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직교수의 복직문제는 그 격동의 시기에 이른바 「개혁」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던져졌던 충격의 응어리 가운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 큰 응어리의 하나였다.
개혁의 장애요소로 지목돼 활동을 규제당한 정치인, 숙정당한 공무원, 해직된 교수·언론인·근로자, 그리고 제적학생들의 거대한 집단은 그 동안 우리사회의 화함과 안정을 밑바탕에서부터 어렵게 하는 응어리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종국에 개혁의 지표인 민주·정의·복지를 헛구호로 만들고 우리사회를 누난의 구조로 몰아갈 국가안보상의 위험조차 내포하고 있었다.
정치인에게서 정치를, 교수에게서 강단을, 언론인에게서 붓을 근로자에게서 일터를 빼앗고 학생들을 학원에서 추방하는 것은 그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사회전체를 위해서도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숫자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그 방면에 경륜을 가진 괄목할 인재들이고 우리사회가 소중히 여겨야할 자원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재산이 구차스런 이유로 참여를 배제당한채 몇 년씩이나 사회의 불만세력으로 방치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며 역사적 실책이다. 더우기 오늘처럼 정치·경제 모든 분야의 리더들이 경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곳곳에서 미숙성을 드러내고있는 것을 볼 때 「사탕」의 값어치는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특히 대부분의 충격적 조치가 옥석구분의 회오리였음을 감안할 때 본의 아니게 외곬으로 몰린 사람의 맺힌 한과 울분도 헤아려야할 것이다.
이같이 원한을 품은 소외집단이 방치되고 그에 따른 갈등이 심화될 때 그들의 행동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당국이 화합의 슬로건을 내걸고 단계적으로나마 해금·복직·복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 응어리를 풀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이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결자해지의 사리에서나 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자진해서 떠맡고 나선 개혁엘리트들의 도의적·역사적 책임에서도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성의」라 할 수 있다.
사회나 인체나 막히고 맺힌 곳이 많아서는 건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병이다. 그래서 건강이란 모든 생리의, 흐름이 맺히거나 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규제·금지·해직·해고와 같은 막고 끊는 극단적 조치는 적을 수록 옳고 없을수록 건강에 좋은 것이다.
해직교수·제적학생들처럼 일시적인 동기나 폭력에서 취해지는 극단조치는 묶는 자나 묶이는 자 양쪽 모두에게 다같이 상처만 남긴다는 사실을 이제는 배울 줄 알아야 하겠다. 묶는 것이 곧 묶이는 것이고 강제하는 것이 곧 강제당하는 것이라는 역설의 진리다. 선지자 도산 안창호는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동포들에게 『나에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음을 인정하자』고 호소했다.
자신을 상대의 자리에 두는 겸손이 없이는 「화합」도 「민주」도 헛구호일 따름이다. 우리의 정치와 사회는 칼자루를 쥔 자의 일방적 논리만이 강요되고 그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는 부정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는 불신과 증오의 확대재생산이었다.
이제라도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용기가 있어야겠다. 해직교수의 복직을 계기로 다른 분야에서도 맺힌 곳을 과감히 풀고 서로가 「남의 한 옳음」을 인정하는 겸손으로 진정한 화합과 민주의 기초를 쌓아나가야 할 때라고 믿는다. 김창태<편집부국장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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