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송권력 앞에 줄세우는 시상식 폐지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MBC가 10대 가수 가요제 행사를 취소키로 결정했다. 10대 가수 중 네 팀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출연 불가를 통보해 와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38년간 섣달그믐 밤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이 가요제가 무산된 것이다. 유난히 악재가 많았던 MBC로서는 올해 마지막날까지 불운이 계속된다는 허탈한 심정도 들 것이다.

그동안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대상 등 각종 시상식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가창력이나 연기력보다는 인기도나 자사 출연 횟수가 선정 기준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방송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모호한 수상자 선정 기준에다 나눠 먹기 식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지상파 3사의 각종 연말행사는 불공정 시비에 휘말렸다. 이러니 가수 등 연예인에 대한 방송사의 줄세우기란 비판이 나왔다. 방송이라는 지상파가 권력화돼 자사의 홍보.위상 과시 등의 목적을 위해 각종 시상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예계를 동원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말 연예인제작자협회가 지상파 3사와 케이블 음악채널의 연말 가요시상식 폐지 성명을 낸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연말 가요대상이나 10대 가수 선정이 곧 인기와 돈으로 연결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한류열풍 등으로 가수들은 지상파 3사의 출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그만큼 세월이 변한 것이다. 일본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보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MBC의 이번 가요제 취소 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차제에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이런 유의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방송계의 각종 연말 시상식에 대한 개선책을 만들어야 한다.

방송사별 줄세우기 시상식을 폐지하고 연말 가요시상식을 통합해 치르는 것이다. 시상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심사를 외부기관에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의 그래미상 같은 권위 있는 가요시상식을 우리도 가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