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국회의원 40% 줄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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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없는 개혁'을 주장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얼굴) 일본 총리가 이번엔 정치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그중에는 현행 국회의원(중의원+참의원) 정원을 40% 가까이 줄인다는 구상도 포함돼 정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7일 밤 집권 자민당 간부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중의원은 300명, 참의원은 150명으로 줄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현행 정원은 중의원 480명, 참의원 242명이다.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지방자치단체 합병으로 지방의회 의원 수는 1만 명 이상 줄었다"면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최우선 과제는 (국회의원) 정원 삭감"이라고 말했다. 긴 안목에서 중.참의원 통합도 개혁 과제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취임 이후 줄곧 '작은 정부'의 실현과 재정 감축을 추진해왔던 노선에 부합하는 것이다.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현재 국회의원 정원이 722명이지만 인구와 국토 면적에 비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래서 1980년대 한때 764명이었던 정원을 소폭 감축했다. 요미우리 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가 "국회의원 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의원 정원 삭감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밥그릇과 직결된 문제여서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1994년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바탕으로 추진됐던 선거제도 개혁 당시에도 중의원을 겨우 11명 줄이는 데 그쳤다. 2000년 중의원 20명, 참의원 10명을 줄일 때도 정치권은 홍역을 치렀다. 그런 경험에 비춰볼 때 고이즈미 총리의 구상은 폭탄 발언에 가깝다.

그의 말대로 '작은 국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미지수다. 고이즈미 본인도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한 듯 "내년 정치 과제로 제시한 게 아니다"라며 "2010년 이후의 이야기"라고 단서를 달았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8일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국회의원 연금제도를 내년 4월부터 폐지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10년 이상 재임한 의원의 경우 재임 중 연간 130만엔(약 120만원)을 불입하면 65세 이후 매년 410만엔을 받게 돼 일반 국민의 연금제도에 비해 특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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