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의 마음'으로 안아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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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1주기(16일)를 앞둔 지난 10일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이 좋아했던 간식이 인쇄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도=오종택 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해 4월 국민은 한마음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마음이 됐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스러워했고 피해 본 분들이 다시 일어서기를 응원했습니다. 아픔을 겪은 분들께 세월호 관련 인사들이 전하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① 이주영 - 전 해양수산부 장관
저는 죄인 … 실종자 사진 품고 삽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때 애도와 사죄의 의미로 수염을 깎지 않았다.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나서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당시의 기억은 단단히 뇌리에 박혔습니다. 가족들께서는 죄인인 저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국회가 상임위원회를 열어 구조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을 때 가족들께서 ‘장관이 가면 곤욕을 치를 테니 안 된다. 우리가 못 가게 하겠다’고 감싸주셔서 국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하신 가족분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으려 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우리를 위해 일을 해야 하니 장관을 보내줍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무도 거기에 이견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죄인입니다. 은인자중하고자 합니다. 한 가지, 아직도 가슴속에는 실종자 아홉 분의 사진을 품고 다닙니다. 그리고 가끔 그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② 박인용 - 국민안전처 장관
국민 안전 기대수준 못 미친 것 압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또한 아직까지 사랑하는 가족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국민 안전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 장관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참사라는 뼈아픔 속에서 태어난 조직입니다. 지난 1년간 정부는 재난안전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재난안전관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의 안전 기대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국민안전처를 비롯한 정부는 재난의 사전예방과 대비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으며 만약의 경우에 있을 재난대응에도 철저한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③ 김동수 - 10여 명 구조한 화물차 기사
잘 버텨준 생존 학생들 고맙습니다

김동수 10여 명 구조한 화물차 기사

자책이 앞섭니다. 막심한 후회만 밀려옵니다. 길을 가다 창문만 봐도 세월호 안에 갇혀 구조를 바라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두 왜 잊지 못하느냐고 합니다만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잊어서는 안 될 것만 같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아야 억울한 희생을 달랠 수 있고, 또 세월호 같은 사고도 다시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젠 세월호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게 해 달라고 가끔씩 기도하곤 합니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오히려 저보다 잘 버텨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이 정말 내 자식같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지금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지만 언젠가 여러분 스스로 당당하게 세상에 서야 합니다.

나오지 못한 친구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고 생각날 때면 그 힘으로 더 학업에 정진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세월호의 기억을 계속 이어갈 힘이 생깁니다. ‘구해주신 소중한 생명, 학업에 열중해 가치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학생들이 보내준 편지를 영원히 기억하렵니다.

④ 유기주 - 세월호 수색 민간 잠수사
어깨 두드려준 실종자 가족 감사합니다

유기주 세월호 수색 민간 잠수사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요즘도 새벽에 문득문득 잠에서 깰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까지 다 찾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결과적으로 기대만 드리고 가족의 품으로 안겨 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수색·구조 중단을 앞뒀던 지난해 11월, 매일 바지선에 올라와 눈물을 흘리고 목 놓아 자식 이름을 부르던 다윤·은화(실종 안산 단원고 학생) 아버지께 “이제 마음을 비우고 일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일 등입니다.

 따뜻한 마음은 잊지 못하겠습니다. 수색 중단을 정부에 요구하고, 마지막에 체육관으로 불러 “고맙다”며 어깨를 두드려 준 건 실종자 가족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저희에게 “미안해하지 말아 동생. 안 다쳐서 다행이야”라고 해주셨습니다.

 지난해 12월 저는 해저 영상 탐사를 위해 진도에서 조금 떨어진 독거도란 곳에 10번 정도 들렀습니다. 갈 때마다 팽목항에 남아 계신 몇몇 가족분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봤습니다. 다가가서 말씀드리지 못했던 얘기를 지금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담담하게 이겨내십시오.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⑤ 이성태 - 219일 봉사 전남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다시 한번 팽목항을 지키고 싶습니다

이성태 219일 봉사 전남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다윤(실종 안산 단원고 학생) 아빠! 아픈 다윤 엄마 잘 챙겨주고 끝까지 용기 잃지 마세요.’

 ‘양승진 선생님(실종 단원고 교사) 사모님! 흔들리지 말고 기운 차리세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 없다는 것을 압니다. 219일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을 옆에서 봐 오면서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219일간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팽목항에서 목놓아 자식의 이름을 부르던 부모들, 되레 자식 찾은 게 미안해 안산에서 진도까지 음식을 해오던 또 다른 가족들…. 특히나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체됐던 지난해 11월, 자식을 찾지 못한 채 팽목항을 서성이던 부모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저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구조의 손길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세월호 안에서 휴대전화로 장난까지 쳤건만 우리는 해준 게 없습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15일부터 2박3일간 자원봉사자들과 팽목항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묵묵히 가족들 곁을 지켜보렵니다. 국민께서도 함께 가족들을 배려하고 보듬어 주세요. 지난해 ‘4월의 마음’처럼 안아주세요.

⑥ 김승태 - 어선으로 구조활동한 진도 주민
상처 또 아파오겠지만 그래도 힘내세요

김승태 어선으로 구조활동한 진도 주민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어떤 말씀도 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참사를 잊기엔 아직도 세월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 역시 약 10년 전 키우던 세 자녀 가운데 둘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아직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둘째가 생각납니다.

 하루빨리 세월호가 인양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1년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더욱 아파올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 때문에 상처가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힘내십시오. 꼭 힘 내십시오.

 생존하신 분들은 조금씩 사고를 잊어가기 바랍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안산시가 구조에 참여했던 진도 주민들을 초청했을 때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잊기 위해서지요.

 세월호 가족 주변 분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유족들에게 지나친 관심과 위로는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유족들이 차분히 1주기를 보낼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서 지켜만 봐주세요.

⑦ 윤석기 -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
대구 참사 후 11년 … 제 역할 못해 죄송

윤석기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

지난해 4월 22일 저는 희생자 대책위 위원 5명과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자책했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난 2003년 이후 11년간 우리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뛰어 제도를 고치고 국민 의식을 바꿔 놓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잘못인 것 같아 죄인이 된 심정입니다. 두 참사 모두 ‘어이없는’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세월호 희생 가족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억울하고 화도 나겠지만 또 다른 우리의 자녀·가족·이웃을 잃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먼저 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그래야 그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당부드립니다. 국민 스스로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어이없는 참사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취재팀=임명수(팀장)·이찬호·전익진·최경호·최모란·최충일·최종권·김호·유명한 기자, 사진=최승식·강정현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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