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심양팀 해커들에게 악성프로그램 구입한 도박업자들 징역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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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 쪽에선 손 못 대는 것도 북한애들은 잘해내지. 남한에서 3일 걸릴 것을 심양팀 애들은 하루 만에 해“

2011년 4월 손모(40)씨는 중국 대련에서 만난 도박사이트 운영자 장모(44)씨와 유모(44)씨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장씨 등은 북한 해커들이 상대방의 모니터를 볼 수 있는 ‘돋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던 중 손씨와 만나게 됐다. 손씨는 2009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도박게임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 프로그램 브로커 최모(일명 '창걸이')씨와 거래를 해왔다. 손씨는 최씨를 통해 북한 정찰총국 산하 조선백설무역회사 심양대표부(심양팀)에 총 980만원을 주고 각종 도박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수정했다.

유씨와 장씨는 최씨를 소개받아 1800만원을 주고 북한 심양팀에 원격감시기 프로그램 ‘해킹투’를 제작했다. 악성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컴퓨터를 감염시켜 타인의 모니터를 볼 수 있고 ‘좀비PC’로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심양팀에서 받은 악성코드를 ‘OOO 노출.jpg’와 같은 파일에 숨겨 국내의 파일공유사이트(P2P)에 올려 유포했다.

이들은 심양팀이 단순한 해커들이 아니라 북한당국의 외화벌이를 담당하고 한국과의 사이버전 임무수행을 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잡힐 경우 ”조선족인 최씨를 통해 거래를 한 것“이라고 범행을 부인할 계획도 세웠다. 처음엔 최씨를 통해서만 거래했지만 나중엔 심양팀과 직접 메신저를 하면서 업데이트 등 후속 조치를 의논했다. 국내에서 심양팀장과는 e메일도 주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이은희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등) 혐의로 기소된 유씨와 장씨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손씨는 징역 1년6개월을 받았다.

이 판사는 ”국가와 사회에 미칠 위험성이 예견됐고 실제 국가기관 등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이뤄져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기도 했다 ”며 “이미 도박개장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이런 범죄를 반복해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경제적 이유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며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거나 북한을 옹호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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