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딸의 한글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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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이랑」이라고 하얀 창호지 위에다 중필로 쓴글씨도 멋있었지만 그 보다는 「이랑」이라는 이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발음하기 또한 아주 부드러워 내마음에 쏙들었다.
그러니까 태어난지 불과 1주일밖에 안된 나의 첫딸아이 이름을 시아주버님께서 손수 지어 우편으로 보내주신 것이다. 이름자에 대한 설명서와 함께,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름을 또하나 지어보내주시겠다는 세심한 편지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른 이름을 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순수한 우리말과 우리글로 지어진「이랑」이라는 이름이 더 훌륭한 이름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자에 대한 설명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 이름이란 부르기 좋아야하며 듣기 좋아야하고 또한 우리말과 우리글로 지음이 타당하다 생각되어「이랑」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랑」이란 말은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알것입니다.』 이렇게 써보내주신 시아주버님의 편지덕분에 몇년만에야 먼지 쌓여 꽂혀있는 국어사전을 꺼내보게되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나의 상식정도가 아주 형편없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 한장한장 넘기며 지면마다 온통 새로운 낱말들로 꽉차 있었다.
이러고서도 일상에서 국적없는 외래어를 남발했던 자신이 부끄럽기 조차했다. 우리의 조상이 만든 우리의 글을 우리가 쓰지않으면 누가 쓰겠는가?
요즘에는 우리말 이름을 지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한몫 끼었음을 자부하며 옆집 경아엄마의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도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으로 지으라고 권유해야겠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시아주버님께 부탁의 편지를 올려야겠다. 더 좋은 이름 지어 이웃의 새로 태어날 생명들에게 우리말 이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드리라고 말이다.

<경남 마산시 서역동84의306 8통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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