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야스쿠니 참배해야 차기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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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김현기 특파원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15일로 창당 50주년을 맞는다. 자민당은 1993년 이후 잠시 정권을 내준 적은 있지만 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그동안 자민당이 걸어온 길은 일본이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만든 '자민당 50년 선언문'초안을 대폭 뜯어고쳤다. "일본의 기품 있는 전통과 문화 등 이른바 '일본다움'을 앞세워…"란 표현을 빼고 "시(是)를 취하고 비(非)는 버린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지나친 보수화와 복고풍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에서였다.

실제 과거 자민당의 심벌로 자리 잡았던 파벌정치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도로족(道路族).우정족(郵政族) 등 이른바 '족 의원'들이 이해집단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은 끝났다. 각료직을 파벌끼리 배분하던 것도 옛 이야기가 돼 버렸다. '고이즈미 개혁'에 의한 변화는 이처럼 의미심장하다.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고이즈미의 지지율이 60%를 넘는 비결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 문화를 거꾸로 되돌린 것도 있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다. '포스트 고이즈미'로 불리는 유력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참배도 이미 굳어져 버린 노선으로 통한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총리의 신사 참배를 옹호하면 고이즈미의 아군이고, 아니면 적이 돼 후계자군에서 배제되는 양상이다.

따지고 보면 우정 민영화로 인한 중의원 해산, 그리고 자민당 압승으로 끝난 총선에도 '야스쿠니의 정치학'이 깔려 있다. 86년 공식 참배 후 이듬해부터 참배를 중단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에 대해 고이즈미가 "나카소네는 겁이 많아 한번 가고 말았지만 난 달라"라고 내뱉은 한마디가 도화선이 됐던 것이다.

격노한 나카소네는 과거 자신의 휘하에 있던 가메이(龜井)파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고이즈미를 끝장 내라"고 지시했고,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결과는 고이즈미의 한판승으로 끝났다. 창당 50주년 행사도 고이즈미 독무대다. 그러나 훗날 역사가 나카소네와 고이즈미 중 누구를 높게 평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도쿄 =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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