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구리의 소리 없는 대실수, 1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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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구리 7단(중국) ● . 이창호 9단(한국)

"팽팽한 형세다. 어쩌면 백이 약간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약간'이란 1~2집을 말한다. 안심할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는 수치다. 중반의 험로에서 당대의 최강자를 맞이한 구리(古力) 7단의 심정은 더욱 절박할 것이다. 이창호 9단도 강적을 상대로 힘든 접전을 벌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고통스러운 중반전에서 두 사람은 모두 실수를 범하게 된다.

장면1=이창호 9단이 흑▲로 젖히자 구리는 118로 날씬하게 뛰었다. 어찌 보면 행마의 틀 같다. 그러나 흑이 119, 121로 기민하게 찌른 뒤 123으로 뛰자 엷음이 노출된다. 갑자기 백의 응수가 궁해졌다. 박영훈 9단은 118을 실수로 지목했다. '참고도' 백 1부터 두텁게 밀었으면 중앙 집도 기대할 수 있어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118은 숨어 있는 대실수였던 것.

장면2=구리 7단은 부득이 124로 붙인 뒤 126으로 이었다. 허술하지만 임기응변으로 절단을 막아낸 상태. 하지만 흑▲를 선수로 당한 격이어서 꽤 당했다. 이제 흑이 하변을 A쯤 차지한다면 무난히 골인할 듯한 국면이 됐다.

한데 이번엔 이창호 9단의 마음이 흔들렸다. 백의 엷음을 목격하는 순간 패의 유혹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127로 패를 결행한 수는 7분 여의 장고수다. 제한시간 2시간의 이 대국에서 이창호 9단이 가장 많이 시간을 쓴 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는 국면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리 호평을 받지 못했다. 구리의 140이 B를 노리는 독수여서 변화가 복잡해졌고 이제 배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132.13.13.141은 패 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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