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김덕홍씨 해외여행 제한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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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탈북 망명 인사인 김덕홍(67.사진)씨에 대한 정부의 해외 여행 제한 조치와 관련, 최근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인권위는 그러나 이 사안을 '위원장 합의 권고'라는 이례적인 조치로 처리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북한 관련 사항에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김씨 측이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낸 진정 사건을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영황 위원장이 '국가정보원에 합의를 직권으로 권고하겠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며 "이후 국정원에 여권 발급을 막는 것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 위원장이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해 처리하는 것보다 내가 합의를 권유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 '위원장 합의 권고'라는 결정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진정 사건에 대해 통상 긴급구제.합의권고.시정권고.조정.기각 등의 조치를 취하며 위원장이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권위 측은 "심의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의결하기보다는 합의하는 것이 진정인.피진정인 모두 더욱 만족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씨가 해외에서 반북 활동을 할 경우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금까지 여권을 내주지 않은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장의 결정은 정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북한 여광무역의 사장이었던 김씨는 1997년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와 함께 망명해 탈북자동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반북 활동을 해왔다. 그는 2003년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정책제안 그룹인 허드슨 연구소로부터 "북한의 인권과 종교 실태 등에 대해 연설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미국 방문을 위해 여권을 신청했으나 국정원 측의 조치로 발급이 제한됐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여권 발급 거부 위법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고, 법원은 '이는 행정소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김씨의 한 측근은 "간첩죄로 처벌을 받은 사람도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 정도로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국 정부가 자유를 찾아 망명한 인사의 여행을 제한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인권위의 권고에 대한 답은 신변안전대책이 마련되면 적절한 시기에 김씨의 방미를 허용한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 관련 논란들

▶ 2003년 4월 : 전원위원회에서 한 위원이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주장하자 김창국 당시 위원장 "시민단체들에 인권위가 버림받을 수 있다"며 거부

▶ 2005년 9월 : 전원위원회에서 2001년 인권위 구성 후 처음으로 '북한인권 관련 기본입장 수립'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

▶ 2005년 10월 : 국정감사에서 "정부와 시민단체 눈치 보며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조영황 위원장 "올해 안에 입장 표명여부와 시기 정하겠다"고 밝혀

▶ 2005년 10월 : 전원위원회서 북한의'아리랑'공연 관람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 내자는 제안 나왔으나 표결로 안건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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