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씨|시사만화는 독자를 생각케 하고 웃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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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둥그런 주먹코에 머리칼 세오라기의 코주부-. 『코주부 삼국지』『코주부 세계여행기』 로 50년대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그 코주부가 곧 엉덩이의 묵은 먼지를 털고 우리 앞에 나타나리란 소식이다.
7월초 3권의 만화 집 출판을 위해 잠시 서울에 들른 김용환화백(71)을 찾아봤다.
『코주부가「서울타임즈」를 통해 국내 최초의 연재만화로 선보인 때가 해방직후니까 어언 40년이 가까와 오는군요.
사실 코주부는「동경조선민보」에서 처음 그리기 시작했으니 그 때부터 따지면 반세기가 넘지요.』
고희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검은머리에 단단한 풍채는 한눈에 노익장의 위력을 느끼게 해준다.
코주부가 태어난 것은 당시일본에 와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 싸움질만 하는 등 자포자기의 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들을 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따라서 코주부는 자연 그 누구도 아닌 우리주변에 흔히 보여지는 인물을 모델로 하여 노동자들의 벗으로 자라나 해방이후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셈이다.
-코주부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책으로 보게되었군요.
『연전에 우연히 융성출판사 김만연 사장과 얘기가 돼서 그 동안 발표했던 것들을 모아 코주부 표랑기」「코주부 만화기」「코주부 시사만화집」등 3권을 펴내기로 했지요.
70년 대초 모일간지에 잠시 연재한 것을 빼놓고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못한 형편인데도 아직도 코주부를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코주부의 인기가 한참일 때 『만화가 코주부인지 만화를 그린 내가 코주부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회고한 김화백은 59년 일본에 건너간 후에도 한동안은 김포공항에 내리면 한눈에 코주부를 알아보고 남보다 우선적으로 대접하곤 했으나 요즘은 일부러 『내가 코주부』 라고 해도 『농담 마십시오』하거나 『바쁘니까 빨리 비켜주세요.』한다며 웃는다.
-요즘 국내 시사만화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시사만화란 생각하게 하고 이해시키고 웃겨야 하는 것이 3가지 필수요건입니다. 일반예술은 작가가 주체가 되어 상대방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만화는 작
가와 독자가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교류할 수 있는 관계로서만 성립이 가능한 예술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우리 시사만화에는『다소 불만』이라고 털어놓는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리송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 과거에 비해 지면도 넓어지는 등 제작여건이 좋아졌지만 내용이 그만큼 향상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와 한다.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일본의 만화를 무비판적으로 흉내내는 경향. 버릴 것은 버리 고 취할 것만 가려 취하는 선별의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요즘 필생사업으로 심혈을 쏟고있는 역사화도 바로 그 같은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람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단군에서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역사를 기둥줄거리로 하여 역사 그림책을 제작, 모두 10권으로 묶어 펴내는 것에 일생을 걸고 있다.
후진에 대한 양성도 그가 조국에 지고있는 마음의 빚 중의 하나. 그래서 이번에 펴내는 책 속에 못다 한 말들도 쏟아 담겠다는 그는 인세를 따로 적립하여 후진을 위한 만학화상기금으로 쓸 계획이다.
동경에서 「요나미지·미스꼬」여사와 단둘이 살고있는 그는 요즘도 틈틈이 사생을 나가 붓대가 자유스럽게 움직이도록 부지런히 스케치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자신한다.
『죽음이 내 팔을 빼앗을 때까지 만화를 계속 그릴 겁니다』라고-. <홍은희 기자>

<약력> ▲1912년 경남 진영 출생 ▲1943년 동경제국미술학교졸업 ▲1959∼1972년 도일하여 미 극동사령부심리전과 근무 ▲1973년∼현재 일본통일일보논설상임 고문 ▲『코주부삼국지』등 만화2백여편 지음. 저서로『귀갑선해전기』『한국의 민화』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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