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과 경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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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무부는 술병 등 위해물을 갖고 행사장에 들어가는 행위, 자연석을 캐거나 글을 새기는 행위, 비밀댄스홀서 춤추는 행위 등을 처벌대상으로 추가한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을 마련, 오는 6월에 열릴 임시국회에 넘기기로 했다.
이 법의 내용을 따지기에 앞서 64년에 제정된 경범죄 처벌법의 어려운 한자 조문을 우리말로 바꾸기로 한 것은 썩 잘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법률용어가 어렵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법원의 판결문에서부터 일선 경찰의 조서에 이르기까지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아직도 얼마든지 쓰이고 있다.
쉽게 물어 쓸 수 없는 전문용어가 있다고는 해도 대부분 서민들이 대상인 경범죄 처벌법마저 「악희」 「세척」 「첩지」 「포자」 「박피」 같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은 관계자들의 무관심 내지 태만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전문용어를 알아듣기 쉽게 고쳐야할 분야야 물론 한둘이 아니겠지만 국민 일상 생활과 관계되는 경범처벌법의 용어를 고치기로 한 것은 다른 법률용어를 알기 쉽게 고치는 작업의 첫걸음으로 평가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법개정안의 내용은 대체로 현정부가 중점을 두고있는 질서지키기 운동이라든지 자연보호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장에서의 소란행위라든지 자연석에 글자 새기기 같은 일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다.
또 서울만해서 하루 1백50대 꼴로 차량이 늘고있는 추세에 비추어 주인 없는 자동차에 숨어드는 행위도 처벌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법률내용을 구체화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행위가 모두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의문이 간다. 어떤 형벌을 과하느냐의 여부는 미리 성문의 법률로 규정해 두어야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사소한 경범죄라도 명문화하는 일은 필요하다.
뿐더러 법의 모호한 규정 때문에 당국의 단속이 「과잉」이란 비판을 받은 일도 많았다. 가령 『저속한 옷차림이나 장식물 부착』(경범처벌법 1조49항)으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었다고 영자 T셔츠를 입은 10대 소년을 구류시킨 경우가 그것이다.
7년 전의 그 같은 판례를 지금에 와서 수긍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같은 T셔츠의 영문자가 그때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면 법률적용에 어딘가 무리가 있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시민생활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법률이 많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좋은 일 일수는 없다. 법률을 만들고 처벌규정을 엄격히 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경범처벌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개정안 가운데 수긍이 가는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문욕례의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것은 그때문인 것 같다.
술병 갖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행위나 자연석에 글자를 새겨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는 또 몰라도 비밀댄스홀서 춤추기, 거리에서 손님 부르기 등이 과연 경범처벌법에 추가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리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공중도덕을 지키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질서를 지키는 습성이 몸에 배도록 하는 일은 법률적인 차원에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민도라고 할까 국민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이 높아질 때라야 그 일은 이룩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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