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만 묶으면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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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7년 부동산 투기가 막 시작될 무렵 막상 손을 써야할 자리에 있던 어느 경제각료는『그동안 불황이라고 야단이더니 이재 겨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니 과열이라고 야단입니까. 부동산 경기가 일어나야 집을 많이 지울게 아닙니까. 큰 아파트만 많이 짓고 서민 주택은 안 짓는다고 걱정들이지만 큰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돈 있는 사람들이 옮겨가면 거긴 서민들이 들어가 살게 아닙니까. 지어놓은 집은 누가 살아도 살지 설마 비워놓겠습니까. 좌우간 집을 많이 지어야 서민들에게도 차례가 가지요. 경제 정책이란 대국적으로 해야지 너무 좁게 생각하면 안됩니다』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바람에 역시 국록을 먹는 사람은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고문원적으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좀 미심쩍어하면서도 안도했던 것이다.
그뒤 중동 달러가 계속 들어와 통화 홍수가 나려 할 때도『이제까지 외환 부도날까봐 죽을 고생을 하다 중간에서 달러가 들어와 국제수지가 크게 개선되고 있는데 통화가 는다하여 그게 큰 문제가 됩니까.
모처럼 찾아온 황금같은 기회인데 이것을 잘 이용하여 우리도 한 단계 도약해야지요』하는 서슬엔 두말을 못했다. 그러나 그 뒤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결국 보통사람들의 상식대로 경제는 돌아갔던 것이다.
사실 요즘 들어 부동산 투기니 하여 저 소동을 부리지만 어찌 보면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여름 벌써 여러 징후들이 나타났고 가을엔 한바탕 소동까지 치렀다. 그런데도 결코 투기가 아니라 건축경기의 활성화라고 설명했고 심지어는 집 값 오르는게 학군 때문이란 기발한 주석까지 달았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집 값이 크게 세번 뛰었다. 74년 오일쇼크 후, 78년 중동 붐 후, 또 이번이다.
세번 다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돈이 크게 풀린 다음해이고 또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일이 커졌다는 것이다. 통화증가율을 보면 73년에 40·6%, 77년에 40·7%, 82년에 45·8%롤 기록했다. 조금씩 늘어온 게 아니라 평지돌출로 돈이 급팽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곡 탈이 났다.
78년 크게 혼이 난 후 79년부터 긴축이 강행되었고 그후 3년여 동안 그 격변 속에서도 통화 증가율을 20%안으로 눌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희망과 기대를 갖고 참아왔던가. 그러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신들리듯 돈을 풀어 상반기까지 13%선으로 조심스레 눌러오던 것을 7월에 37·4%, 9월에 69·2%까지 올려놓고 연말에 좀 줄인 것이 45·8%다. 금년 1월엔 다시 48·2%로 올랐다. 돈이 그토록 느는데 대해선 작년부터 우려가 나왔었다.
그런데도『옛날과는 달리 사채가 금융권으로 흡수되고 금융구조가 개혁되니 통화 증가율이 높아도 걱정없다』『한국의 마셜K(GNP에 대한 통화비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낮다』『통화의 유통속도가 떨어지니 돈이 많아도 많은 것이 아니다』운운하고 고차원적 이론을 전개하는 바람에 역시 국록을 먹는 사람은 보통사람들의 상식보다 한수 더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더욱 물가지수가 내려가자 돈이 늘면 인플레가 온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이론이고 최신 첨단이론은 다른가 보다하고 안도했던 것이다. 금년들어 과잉 통화가 출렁대고 저금리로 돈이 은행을 빠져나가는데도 역시 걱정없단다. 더우기 저배당 정책으로 증권에서조차 돈이 빠져도 낮아진 물가지수만 앞세우며 여전히 안심하란다.
그러나 역시 상식적 우려대로 탈이 나고 말았다.
투기가 한바탕 극성을 부린 후에야 후닥닥 놀란 듯이 부동산 투기 대책을 내놓았다.
그것도 투기꾼들을 막는데 주로 겨냥한 대증요법이다.
지난3년여 동안 잠잠하던 투기꾼들이 왜 갑자기 준동하기 시작했는지는 덮어둔채 투기꾼만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통화나 금리에 대해선 일체 말이 없다.
그게 두루 좋다. 돈이 많고 그걸 잘못 유도하여 투기가 났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지만 투기꾼이나 학군 탓으로 둘리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보다.【최우석 부국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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