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까지 보시한 법장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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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입적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가 12일 생전의 장기.시신 기증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 조계사에서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새벽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法軀.승려의 시신)가 연구실험용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된다. 스님의 법구가 다비식을 하지 않고 병원에 기증되는 것은 한국 불교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법장 대종사 장의위원회(위원장 현고 스님)와 문도회(대표 설정 스님)는 12일 서울 견지동 총무원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기기증 운동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세우신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법구를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장 스님은 1994년 3월 24일 생명나눔실천회(현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설립하고 자신의 각막 등 장기를 포함한 시신 전체를 기증할 것을 서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5일 오후 3시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비식은 취소됐다. 영결식만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열릴 계획이다.

이석현 동국대 의료원장은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즉시 병원으로 법구를 모시고 가 쓸 수 있는 기관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법구는 기자회견 직후인 이날 오후 3시50분쯤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옮겨졌다.

법장 스님은 평소 "육신은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니, 내 몸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불교의 기본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며 시신 기증 의사를 여러 차례 강조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정 스님은 "제자를 비롯한 몇몇 스님이 '불경스럽다'며 반대하는 등 논란이 있었지만 개인통장 하나 없이 마지막 남은 시신마저 남김없이 중생에게 회향(回向)하겠다는 법장 스님의 뜻을 우리 문도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계종 종법에 따르면 매장은 금지하고 있지만 다비식을 꼭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장기기증 희망자와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를 결연해 주는 비영리 민간단체. 한편 정부는 법장 스님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하기로 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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