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의」에 성패 달려|보상의 구체적 방법 등 명시 안돼|「소비자 피해보상기구」의무화-그 내용과 전망|1 차로 115개소 선정, 점차 확대계획|일부업체선 눈가림 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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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당국은 최근 소비자보호법의 시행에 맞춰 일정규모이상의 기업에 소비자피해보상기구 설치를 의무화했다. 전담부서를 마련, 소비자로부터의 각종 고발과 불만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보상기구의 설치는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시킨다는 면에서 일단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상의 의무규정 등 법적미비가 눈에 띄고 기업체의 성실한 이행여부 등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피해보상기구의 내용과 앞으로의 과제등을 알아본다.

<보상전담기구>
정부가 이번에 소비자피해보상전담기구를 설치하도록 한 업체는 모두 1백15개다. 이 전담기구란 생산품이나 파는 상품 또는 용역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했거나 불만을 가지고 고발 해 올 경우 이를 전적으로 맡아 해결해주는 기구를 말한다.
선정업체 중에는 이름을 들면 언뜻 알아차릴 수 있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제조업이 79개, 도소매업 35개, 가스업 1개로 분야별로는 음료·식품업이 23개로 가장 많고, 이어서 백화점·쇼핑센터 등 유통업체·섬유·의류·가전업체·가구업 등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깊은 사업체들이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업체는 종업원이 1천명이상일 경우 5명이상, 5백명이상일 경우 2명이상의 전담요원을 둬야 한다. 이와 함께 운영기구를 설치 않을 때는 법에 따라 1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접수된 고발사항이나 처리결과를 정기적으로 주무부처에 보고토록 의무화했다.

<업체들의 대책>
보상기구의 설치가 의무화되자 당장 부담을 안게된 것은 기업들이다. 전담기구를 새로 만들고 강화하느라 부산하다. 가전업체들은 종래의 애프터서비스기능을 강화하는 외에, 소비자보상실이란 이름아래 2∼3명의 전담요원을 추가배치, 고발업무를 관장토록 했다. H·L·S등 식품·음료업체들도 경영진 직속으로 기존기구를 강화했고 백화점들은 매장 안에 소비자상담실을 설치, 운영할 계획들을 마련 중이다.
이밖에 홍보책자나 공장견학, 순회강연등을 자주 가져 상품 지식도 제공할 겸 소비자들과의 접촉기회를 넓힌다는 계획을 각 기업들이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선정업체 중에는 아직도 보상기구설치에 관한 구체적인 안을 마련치 않은 업체들도 많다. 영업이나 판촉 등 기존 부서에서 적당히 인원을 메워 기구만을 만들겠다는 생각들을 갖고있고 이런 업체일수록 대부분 지금까지 소비자의 시선을 덜 받아온 채 무풍지대에 안존해온 업체들이다.
물론 기업들의 소비자 외면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전담부서도 없는 채, 소비자의 고발이 들어오면, 영업이나 서비스파트에서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처리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에 선정된 업체중, 기존소비자보호기구를 갖고있던 업체가 전체의 3분의1도 안되는 35개업체뿐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말해준다.
한 농약회사 관계자는 『농민들이 직접 합의를 하는 일도 드물뿐더러 있다해도 비선택성 제초제를 잘못 뿌려 벼가 모두 죽자, 약간의 보상과 다음 해 농약을 일부 지원해 준 게 지금까지의 가장 큰 보상의 경우였다』고 토로하고 있다.
상품은 팔아도 사후대책엔 무관심했던 관행이 단시일 안에 바꿔지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보상기구가 각 기업에 설치돼도, 당장은 소비자들과의 마찰이 예기되고 따라서 보상기구제도의 정착화에는 적쟎은 진통이 뒤따르리라고 소비자보호단체들은 보고있다.

<소비자의 입장>
상품에 대한 불만이나 피해를 보았어도 방법을 몰라 주저앉는 게 지금까지의 많은 소비자들이었다면, 보상기구의 설치는 일단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소비자들은 피해가 생기면 직접 각 업체의 전담부서를 찾으면 된다.
각 업체는 전담부서의 전화번호를 고지하고, 부서안내표지도 눈에 띄게 만들어 소비자의 접근을 쉽게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피해보상창구를 두드렸어도 업체가 이를 외면할 경우가 문제다. 불행히도 현행 소비자보호법에는 피해보상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나 의무규정이 없다. 피해보상제도나 소송비용지원제도, 소비자보호기금설치, 사업자무과실책임 등 선진적인 내용들이 담겨야하나 법제정과정에서 우리의 경제현실에는 이르다는 판단아래 이런 조항들이 빠졌다.
결국 전담기구의 설치는 의무화됐어도 권익보호를 위해선 소비자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소비자보호단체들은 이 경우 각 행정기구의 고발창구나 사회단체의 고발센터를 이용 할 것을 권고하고있다. 지금까지 예를 보면 이들 기관은 접수된 고발내용을 각 업체에 통보, 시정토록 조치했고 유령업체나 군소업체의 상품이 아니면 대부분 소비자의 요구대로 해결해 왔다.
당사자간의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나 물론 법정으로 끌고갈 수도 있다. 피해보상범위도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예컨대 이물질이나 상한 식품을 먹고 피해를 보았을 때는 치료비까지 회사측이 배상한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중 소비자고발건수는 1만8백13건으로 작년동기에 비해 26.1%나 늘었으며 근래에는 부산·대구등지에서도 고발이 급증,
소비자운동이 지방에까지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소비자의식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뒤떨어진 상태다. 일본의 경우는 81년 현재 5백개 기업이 소비자보호전담기구를 두고 있으며 전담인원만도 업체평균 6·5명에 이른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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