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보리 상임국 결국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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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이 사실상 무산됐다. 유엔 총회에서 52표를 가진 아프리카연합(AU)과 일본 등 안보리 진출 추진 4개국(G4)의 안보리 확대 결의안 단일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 국내에서는 외교역량을 총집결해 추진해온 안보리 진출 전략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 아프리카에 발등 찍힌 일본=AU는 4일 에티오피아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G4와의 결의안 단일화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단일화 반대 입장인 10개국 위원회에 결론을 위임키로 했다. 일본은 안보리 진출의 꿈이 좌절됐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외무성 관계자는 "모든 것이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산케이 신문은 칼럼에서 "이제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말할 때가 됐다"며 더 이상의 집착을 경계했다.

아프리카와의 단일안은 유엔 회원국 3분의 2(128개국)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과제였다. AU 따로 G4 따로 결의안을 제출하면 양쪽 모두 부결될 것이 뻔하다.

단일안 마련이 실패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신규 상임이사국(6개국)에 대한 거부권 부여 문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AU 국가들 간의 견제와 알력 때문이었다. G4는 신규 이사국에 대해서는 15년간 거부권을 동결할 것을 주장했다. 기존 이사국과 반대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한 절충안이었다. G4와 나란히 상임이사국 진입을 희망하는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 안에 찬성했다. 반면 나이지리아의 진출을 반대하는 이집트.알제리.리비아 등은 즉각적인 거부권 부여 입장을 고수했다. 결의안의 실현 가능성보다는 라이벌 국가의 안보리 진출 저지를 우선한 것이다.

◆ 거세지는 비판론=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국내에선 안보리 진출 전략을 주도해온 외무성 등 당국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외교역량을 다 쏟았으나 정작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정부가 형세판단을 잘못해 전략을 잘못 짰다는 지적이 나왔다. AU 내부 사정을 읽지 못하고 단일안 마련에만 주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부시 정권과 고이즈미 정권의 밀월관계를 믿었던 것도 판단착오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안보리 확대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지금도 "일본만은 안보리에 진출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본 관계자들은 말치레(립서비스)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표밭인 아프리카에 노골적으로 의존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소홀히한 것은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으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자세는 보여주지 않았다. 동남아 국가들로부터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샀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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