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한 대법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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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여성들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전통 관습과 기존의 판례를 근거로 출가한 딸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 사법부가 사회환경과 인식의 변화를 반영해 양성평등의 이념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여성의 사회활동이 크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핵가족의 확산으로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를 두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종중 재산 분배 등에서 차등을 두었던 것은 성년 남성만을 종원으로 인정해온 '관습법'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회생활 규범이 관습법으로 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로 인해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됐다면 그 효력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이 새 판례의 적용을 이 사건 이외에 새로이 성립되는 법률관계에만 적용토록 한 것도 잘한 일이다. 이번 판례를 소급해 적용한다면 그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종전 판례를 믿고 이뤄진 수많은 법률관계가 일시에 무효화될 수 있고, 종중 재산 등을 둘러싼 소송도 봇물 터진 듯 제기될 것이다.

지난 3월 호주제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남녀차별적인 법제들은 어느 정도 바로잡혔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물론 꾸준히 찾아내 개선해야 할 것들이다. 그렇다고 오래된 관습들을 무조건 남녀평등의 잣대로만 봐선 안 된다. 호주제 폐지만 해도 이로 인해 개인 중심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해진다면 가족이란 울타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에 소수 의견을 낸 여섯 명의 대법관이 지적한 결사의 자유나 양심.종교의 자유 등과 같은 다른 가치와의 충돌 문제도 유의해야 한다. 양성평등의 원칙과 전통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