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에서 낙법 먼저 배우듯…연착 기술 익혀야 재 이륙가능<국내경제>선진국 수입 늘어 수출 어려움 줄어|기업은 불황 탓 말고 체질개선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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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작년 하반기에 경기예고지표가 떨어지고 신용장내도 액이 주는가 하면 제조업가동률은 73%에 머물렀다. 건축경기도 밑바닥에서 맴돌았다.
이런 걸 보고서 어떤 사람들은 새해경기가 좋아진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며 입을 다문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살아날 더 밝은 면이 있는데도 얼굴을 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재작년에는 내수기반이 근본적으로 취약한데다 쌀 흉작까지 겹쳤었다. 그러나 작년에는 쌀 농사가 평년작수준으로 회복되어 농가소득도 40∼50% 늘어났다. 그것은 올해 구매력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도시근로자의 입장을 보면 작년에는 임금이 명목 가격으로 17% 올랐으며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되어 실질소득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새해에도 물가가 계속 안정될 것이므로 도시근로자의 실질 소비지출이 늘어난다. 예상되는 민간부문의 소비증가율은 5%정도다.
해외건설 수주도 늘어나 일하러 나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올해 해외근로자가 본국으로 송금할 돈은 작년보다 3억4천만달러가 증가된 22억 달러로 예측되는데 이 역시 내수소비를 뒷받침하게 된다.
작년 선진국의 수입감소로 우리의 수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올해 그들의 수입물량이 4%증가할 것으로 보여 작년보다 물건값 받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기업들이 자금압박에 허덕이고 있는데 누가 시설투자를 하겠느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기업이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판매촉진 쪽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수출부문 수요도 늘어나 기계 이외의 산업에 투자를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불황이다 불황이다 하는데도 공장·상업부문의 건축허가 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올해 7%의 경제성장은 피부로 느끼기에 역시 「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2차 석유파동 이후 옛날 식의 경기회복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볼 때 수출에서 무리하지 않고라도 작년보다 훨씬 개선된 44억 달러 수준의 경상적자는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경제체질이 개선돼 국제수지 적자가 40억 달러까지 줄어든다면 정부도 여기에 맞게 경제운용을 할 것이며 그 때 내수부문의 활성화도 가능할 것이다.
기업들은 공산품을 밑지고 팔고 있기 때문에 경기회복만 했다 하면 값을 올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물건이 모자란 때의 경제운용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비자가 물건을 안 사주는데 함부로 값을 올릴 수 있겠는가.
기업의 자금난은 팔릴 만한 물건을 더 싸고 더 좋게 만들어 나감으로써 풀린다.
불황기업에 돈 대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가망 있는 것은 구멍을 막아 주어야 하겠지만 그럴 전망이 없는 독은 아예 깨 버려야 한다.
비료와 석유화학 등 불황기업의 정리는 제2의 도약을 위한 연착륙준비 때문에 불가피하다.
유도에서 맨 처음 낙법을 배우는 이치를 생각해 보라. 그래서 20∼22%의 총통화증가율도 힘겹게 지켜 나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경제를 운용하는데 사회전체의 부담이 되는 제도·장치·법령도 고쳐 올해에는 획기적인 경제체질개선을 해 나갈 것이다. 예산편성·관세제도·수입정책의 변화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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