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뜸한 모택동 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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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 모택동의 생가가있는 호남성의 소산은 한때 중공 최고의 성지였다. 66년부터 76년사이 문화대혁명기간중 2천만명이상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 홍기를 나부끼고 모어녹을 암송하면서 경배했다. 하루에 두차례씩 기차가 들어오고 여관은 만원사례였으며 하얀 대리석으로된 박물관까지 세워졌다.
그러나 모가 죽고나자 얘기가 달라졌다. 호텔은 방이 비고 기차는 하루한번밖에 들어오지 않고 1백2O명이나 되던 안내원은 36명으로 줄었다.
박물관에는「내부수리중」이란 푯말이 붙어있다.
관람객 태도도 예전과 달라 벤치에 길게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까지있다.
모의 대형초상화는 먼지 투성이의 복도 한구석에 내팽개쳐져있다.
한 여자안내원은 『문화혁명기간중엔 내 직업이 영광스럽게 생각됐었다』고 말하고『그러나 지금에 와서보니 모주석도 그저 한 인간이었을 뿐 신은 아니란 것을 알게됐다』고 했다. 이 곳 한 책방에서는 모생존시엔 불살라버리도록했던 사람과 모험 얘기책이 날개 돋친듯 팔리고있다. 반면 모어록을 찾는 사람은 거의없다.
소산집단농장 노동자도일한 만큼 보수를받고 자기가 농사지은 농작물을 내다 팔수가 있게됐다. 한4O대여인은 금니를 해넣을수 있게됐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텔리비전까지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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