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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등교인데 학생들이 배고파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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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한창 자랄 때라 3~4교시쯤이면 아이들이 허기를 느껴 집중도가 떨어졌는데 요즘은 정말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자나 빵을 싸오는 애들이 늘었는데 교실에서 봉지 뜯는 소리라도 나면 마구 달려들어요.” 경기도 시흥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9시 등교’ 정책을 시행한 후 나타난 현상이다. 충분히 잠을 자게 하고 아침식사 시간을 보장하자는 게 이 교육감이 내세운 이유인데 아이들이 전보다 배고파한다니 어찌된 일일까.

 사정은 이랬다. 이 학교 학생은 당초 오전 8시20분까지 등교했다. 중학생은 45분 수업하고 10분 쉬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낮 12시10분부터였다. 그런데 9시 등교 이후 낮 12시40분으로 늦어졌다. 식당 공간이 좁아 반별로 순서를 정해 식사하는데 후순위 학생들은 예전이라면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오후 1시 이후 점심을 먹는다. 경기도 용인시 고교도 점심시간이 오후 1시로 바뀌었다. 이 학교 교무부장은 “배고파하는 학생이 많아 3교시 후 점심을 먹는 걸 검토하고 있지만 오후 수업이 늘어나면 졸려 하는 아이들이 많아 무작정 당길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고3 수험생은 낮 12시10분부터인 수능 점심시간과의 불일치를 걱정하기도 한다.

 9시 등교에 대해선 찬성 여론도 많다. 아침 시간이 느긋해져 좋아하는 학생이나 밤낮으로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자녀가 안쓰러웠다는 부모가 상당수다. 하지만 파급 효과를 살피지 않고 이 교육감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당선 이후 갑자기 9시 등교를 들고 나온 이 교육감은 맞벌이 가정의 불편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만 했다. 조기 등교 학생을 돌볼 부담은 결국 비정규직인 학교 도서관 사서에게 지워졌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사서들은 1일 “교육감이 9시 등교를 발표하자마자 학교 측은 도서관 사서에게 일찍 출근하라 강요하고 무료 봉사까지 요구했다”고 반발했다.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일수록 점심까지의 기다림은 길어진다.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식의 정책은 이뿐이 아니다. 이 교육감은 학생 지도용 벌점제도 폐지했다. 경기 파주의 중학교 교사는 “폐지 이후 교육청에서 후속 대책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보내와 두 차례 회의를 했는데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며 “9시 등교든 벌점 폐지든 시범학교를 정해 한 학기라도 해봤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떴듯 이 교육감이 진보적 어젠다를 선점했다고 뿌듯해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가 백조처럼 명분을 말할 때 일선 교사와 일부 학부모·학생은 물 속에서 하염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다. 이 교육감은 야간자율학습 폐지도 거론한다. 다른 진보 교육감들은 그를 벤치마킹할 태세다. 세월호 민심을 타고 당선된 교육감들이 국내 정치에서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다 유권자의 마음을 잃은 사례가 많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