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들려주는 민악의 소리|연기자-관객이 일체 되어 나약한 역사의식 일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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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산에 있을 때의 생각으로는 서울에 가면 좋은 염화도 보고 연극도 구경하고 오리라 잔뜩 벼르고 가지만 막상 당도해 보면 특별시의 특별한 혼잡과 무시무시한 사람의 물결에 그만 접을 먹고 볼일만 후딱 보고 이내 내려오기 일쑤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오늘 연극을 하나 구경했다.「구경」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내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 한판 굿을 하고 난 느낌이다. 『무엇이 될꼬 하니』는 그만큼 연기자와 관객 사이에 일체감으로써 거리를 좁혀준다.
극중에도 두어 차레 나오지만 연기자들은 개별적인 관객 앞에서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상된 일을 이야기함으로써 감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관객전체를 향해 시민들의 나약한 역사의식을 아프게 찌르기도 한다.
이런 기법을 보고 우리들은 관객으로서 웃고 앉아 있을 수만 없이 부끄럼과 자책을 느끼게된다. 일상에 얽매여 살아가는 일상인들 자신은 역사의 주인 쪽이 아니라 방관자 쪽에 가깝기 때문.
우리들 가슴속에 시퍼런 멍으로 남아있는 지난날 의한,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우리들의 울분. 극중의 한 맺힌 장면마다 적절하게 불려진 창을 들을 때, 이 소리야말로 진짜 우리민중의 소리라는 걸 절감할 수 있다. 알맞게 삽입된 창은 이 연극을 보다 우리 것이 되게 한 좋은 배려인 것 같다.
산 승의 처지라 잘은 알 수 없지만, 극중에서 전개되는 춤을 보면서 억울하게 짓밟힌 민중의 율동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되고, 예술탄생의 비밀 같은 걸 감지할 수 있었다.
머지 않아 『무엇이 될꼬하니』 는 유럽순회 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우리 모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 연극을 본다면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한국적인 상황에 상처받은 추억이, 갖은 구실로 유보 당한 자유에 대한 그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무대예술의 밝은 가능성을 나라밖에서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 잿빛 세월을 꽁꽁 앓으면서 기를 펴지 못하다가도,.이런 연극을 보는 날이면 우리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임을 확인하게 되니까. 이런 좋은 연극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 극단 「자유」의 동료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송광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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